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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불청객
2015년 03월 16일 (월) 17:06:01 정유진 없음
어떤 불청객 다급하게 문을 열어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한 씨였다. 여보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내가 문을 살짝 열고 무슨 일이요, 라고 말하려는 참에, 그는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고, 그 다음엔 다리를 집어넣고, 그의 몸통을 밀어 넣더니, 최종적으로 머리통까지 집어넣고 내 방으로 들어 왔다. 다섯 평도 채 안 되는, 천장이 검은 곰팡이로 뒤덮인 나의 방 한 칸짜리 집에 들어온 한 씨는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지나치고는 방금 전까지 내가 온기로 덥혀 놓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떠는 것이 아닌가. 그 꼴이 우스워 쳐다보고 있다가 나는 덜컥 겁을 먹고 문틈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 밖의 동정을 살핀 다음 문을 잠갔다. 무슨 일이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이오? 한 씨는 대답 없이 벌벌 떨고만 있었다. 나는 답답하여 한 씨가 뒤집어쓰고 있는 이불을 잡아 당겨서 빼앗아버렸다. 한 씨는 온몸의 털이 밀린 양처럼 애처로운 모양새였다. 그는 다시 이불을 되찾으려 내 품에 있는 이불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두 팔을 올려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살려주세요, 귀신이 쫓아오고 있어요, 라고 되풀이하여 말하였다. 나는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요, 라고 말하면서, 내가 생각해도 이것은 참 재미있는 농담이다, 라고 생각하며 그의 떨고 있는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한 씨는 급기야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때 그의 엉덩이를 발로 차서라도 문밖으로 쫓아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한이다. 한 씨는 약국집 아들로 행실이 괴상하여 슈퍼 앞에서 술판을 벌이는 수다꾼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락 내렸다. 그는 하는 일 없이 글을 쓴답시고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늦은 밤이면 슬그머니 나와 슈퍼에서 주전부리를 사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구부정한 몸에 초점 없이 풀려 있는 눈빛으로 그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부딪힐까봐 조심히 움직이곤 했으며,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여 슈퍼 주인이 계산을 하면서 엄마는 잘 계시지? 라고 물어도 별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탈출하듯 황급히 나가버리곤 했다. 그럴 때면 수다꾼들은 멀어지는 그의 뒤통수를 보면서 일제히 혀를 차대며 한 마디씩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던지는 것이다. 한 수다꾼의 말에 따르면, 그가 한 씨네 약국을 간 적이 있는데, 옆에 있는 한 남자가 침이 떨어질 정도로 입을 벌리며 허공을 쳐다보고 있기에 섬뜩하면서도 젊은 사람이 많이 아픈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약국집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명색이 약국을 하는 집인데, 아들이란 인간은 제정신이 아니니, 자기 아들부터나 약을 잘 먹여야 할 판이다, 라고 말하며 수다꾼은 기침을 해대며 웃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렇게 미친놈 모양새로 앉아 있으니 약국집 부인이 그 꼴을 보다 못해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나가, 라고 소리를 지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약국집 아들을 꿈쩍도 않고 천장만 보고 있어서, 결국 자기 손바닥만 아프고 제풀에 지친 약국집 부인은 쌍화탕을 하나 들이키며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쳐대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를 쏘아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또 괜스레 거슬리고 짜증이 올라오면 그의 등짝을 한 번 더 때리고 발로 엉덩이를 밀면서 결국에는 약국에서 그를 내쫓아버리고 말았다고 말하며 수다꾼은 사레들린 듯이 기침을 해대면서 웃었다. 그 말을 하는 수다꾼은 고혈압이 있어 약국에 자주 들락거리는데 그러한 광경을 볼 때마다 고혈압이 있는 나보다 이런 아들이 있는 약국집 부인이 더 오래 못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오며 퍽 재미있어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고작 이런 것이다. 슈퍼에 담배를 사러 가다가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지는 그에 대한 평을 얻어 들은 것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가 한 씨인 것도 그의 모친이 운영하는 약국이 ‘한씨네 약국’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그도 한 씨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의 모친이 한 씨인지 부친이 한 씨인지는 불분명하여 그가 정확히 한 씨인가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를 약국집 아들, 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인상은 어쩐지 약국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기에 약국집 아들이라는 호칭은 내 입에는 붙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넙대대하고, 코는 아주 뾰족하며, 눈은 강아지마냥 크면서도 초점이 흐릿하다. 머리는 잘 안 감는지 떡이 져 있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는 것이, 그의 뒷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쓸쓸한 기분이 들 지경이다. 나는 웅크리고 있는 한 씨의 등짝을 향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귀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고, 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씨는 벌벌 떨기만 할 뿐 대꾸조차도 없는 것이었다. 귀신이란 게 도대체 무슨 귀신이란 말이오? 무얼 보았기에 이리 호들갑인지. 나는 한 씨의 옆으로 가 한 씨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려놓았다. 그런데 한 씨가 손을 올려놓기가 무섭게 흠칫 놀라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자초지종이라도 얘기하면 어찌 도울 궁리를 해보겠는데, 할 수 없이 약국에 가서 알려야겠소, 라고 말하니 그제야 한 씨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물 한 잔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슈퍼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수다꾼들로부터 한 씨가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나 역시도 작은 골방에 틀어 박혀 글을 쓰는 소설가 지망생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글을 쓴다, 쓴다 하는 녀석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요새는 개나 소나 다 글을 쓴다고 난리이군, 이것도 경제 상황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녀석들 얼마나 글을 잘 쓰나, 한 번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한 씨의 괴상하고 멍청해 보이는 인상 탓에 오히려 그 녀석이 천재적인 인물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슨 글을 쓰는지, 얼마나 잘 쓰는지 알 도리가 있겠는가. 그런 시답지 않은 인물에게조차 호기심을 갖는 것이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가지면 좋은 자세이기는 하지만, 나는 내가 요새 쓰고 있는 글에 더 골몰하고 있었기에 그저 그런 인물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며, 한 씨에 대한 관심은 담뱃불을 끄면서 동시에 사그라졌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귀신이 나타났다고 소란을 피우며 내 자취방으로 기어 들어와 가장 따뜻한 자리에서 저러고 있으니 나는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사그라졌던 한 씨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생겨나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그가 쓰고 있는 글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이렇게 생각한 것 또한 역시 한스러운 것이다. 한 씨에게 끓인 보리차를 내어다주니 그는 그것을 홀짝거리다가 입을 우물우물 하면서 자신이 보았다는 귀신 이야기를 꺼냈다. 며칠 전부터 천장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키득키득 웃는 소리도 나고 무엇인가를 모의하고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저 제가 쓰고 있는 이야기에 몰입하려고만 했었습니다, 방음이 잘 안 되어 참 불편하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그가 다시 끓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실 때 나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오? 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나서 아차, 싶은 것이 이것은 흐름을 끊는 질문이었고, 그것이 그를 언짢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질문이 그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작용을 한 것 같았다. 제가 쓰고 있는 글이요? 음, 대강 말씀드리자면 다리 하나를 잃은 남자가 적당한 의족을 맞추기 위해 돌아다니는 내용입니다, 본래 붙어있던 자신의 다리만한 것은 찾을 수 없는 법이지요, 그는 조금 멋쩍은 듯이 대답하며 컵의 주둥이를 손끝으로 훑었다. 몇 초간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고 나서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수군거리는 소리는 더 심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다그치기도 하였고, 큰 소리로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참 몰상식하고 할 일 없는 이웃이 다 있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옷걸이행거를 분리하여 봉을 하나 떼어낸 뒤에 그걸로 천장을 몇 번 쳤습니다, 시끄럽다는 항의로 알아들으라고 말입니다, 그는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며 봉으로 천장을 쳤던 당시의 자신의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여기는 난방을 좀 심하게 하는 것 같군요, 땀이 다 나려고 하네요, 라고 말하며 이미 바닥을 보인 컵을 습관적으로 입에 갔다댄 그는 컵을 내려놓으며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말에 나는 보일러의 온도를 낮추고, 창문을 한 뼘 정도 열어놓았다. 바깥의 찬 공기가 그 틈으로 몰아쳐 들어와 나의 뺨을 쳤고, 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의 귀신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이 인간이 정말 미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마 정신병이 있어서 환청 같은 것을 듣는 인간이겠지. 그의 귀신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한 씨는 초저녁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위층 사람들이 너무 큰 소리로 웃고 떠들기에 짜증이 난 그는 다시 봉으로 천장을 쳤는데, 오히려 소리는 더 커졌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나는 가끔 바람이나 쐴 겸 슈퍼나 약국을 가는 것 말고는 외출도 잘 하지 않는데, 저 무례한 인간들이 나를 어떻게 아는 것이지, 아마 동네 사람들이 나를 가지고 수군대는 걸 들었나 보군, 그래도 그렇지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의 뒷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역시 형편없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뱃속의 라면이 잘 소화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불쾌감을 안고서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고 한다. 저런 형편없는 인간들은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를 나는 쓰고 있단 말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멋진 세계가 있는데, 매일 저렇게 술이나 퍼 마시며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테지, 라고 그는 생각하며 불쾌감을 누그러뜨리고 있는데, 마치 자신의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 같은 말이 위층에서 들려왔다고 한다. 멋진 세계는 얼어 죽을, 퍽이나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쓴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밥이 축내는 밥버러지 같은 놈밖에 더 되겠어? 이 말에 한 씨는 의아하고도 오싹하여, 용기를 내고 위층으로 슬금슬금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아니, 한 씨가 살고 있는 방 위층 옥상에는 집이 아닌 화단이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화단 반대편에 있는 옥탑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는데, 거기 사는 사람은 외출중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을 비웃는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한 씨는 소름이 돋고 너무 무서워 그 길로 냅다 달렸다고 했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어느 순간 웃음소리가 그쳤는데, 그래도 너무 무섭고 두려워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황당한 귀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방에서 글만 쓰다보면 이처럼 미치게 되는 건가 싶어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를 어서 돌려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너무 오랫동안 집에 있어서 심신이 심약해져 환창을 들은 것일 테요, 밥을 잘 챙겨먹고 운동도 하다보면 괜찮아질 거니 걱정 말고 이제 돌아가시오, 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급기야 울상을 지으며 시선을 방바닥에 파인 홈에 둔 채, 저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까? 당신도 그들과 한 패인 것입니까? 당신도 그들처럼 저를 비웃고 있습니까? 라며 몰아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누렇게 뜬 흰자위가 드러나도록 나를 치켜보며, 다시 했던 말을 되풀이하였다. 나는 섬뜩해져서, 그렇지 않소, 나는 귀신들과 한 패가 아니오, 진정하시오, 형씨, 라고 말하며 나는 참 비굴한 인간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한 편, 이런 바보 같은 녀석을 뭐가 무섭다고 나는 달래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신이 나간 놈이기에 회까닥하여 칼이라도 휘두르면 어쩌나 싶어 무서워졌다. 마침 싱크대 위에 오전에 깎아 먹은 감의 껍데기 위에 날선 과도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흘긋 보며 이놈이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려고 하면 저것부터 손에 쥐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신경을 거기에 쏟으면서 한 씨를 향해 비굴해보일 정도로 침착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진정하시오, 형씨, 나는 형씨를 도우려는 것이오, 라고 말하며 다시 끓인 보리차를 그에게 떠다 주었다. 그리고 눈물이 맺힐 정도로 나를 치켜보는 한 씨에게, 더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귀신이라는 게 실제로 있을 줄은 몰랐소, 내가 어리석었소, 라고 말하였다. 그는 다시 울상을 지으며, 저 좀 살려주세요, 그 귀신들이 나를 얼마나 지켜보았는지 모르겠어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랫동안 저를 가지고 수군댔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쭈뼛하고 섭니다, 그들이 무슨 모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저를 가만히 두려는 속셈은 아닐 것이에요, 부탁을 좀 드릴게요, 당분간 여기서 저를 지내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였다. 나는 ‘당분간 여기서 지내게 해 달라’는 말에 황당하여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면서도 그의 눈치를 슬쩍 한번 보았다. 혹시라도 그가 허튼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갑자기 찾아온 황당함이 섞여 머리를 아찔하게 하였다. 그 상태로 잠자코 있으니, 한 씨가 결국에는 나의 소맷자락을 붙잡으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이었다.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래, 하루 정도만 재워주고 아침이 되면 약국에 찾아가야겠다, 약국집 부인에게 이놈을 데리고 가라고 말해야지, 혹시 모르니 경찰서에도 말해두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을 달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도 한 씨 미친놈처럼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좁은 방에 요를 깔고 한 씨와 나는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 씨가 불을 다 끄면 무섭다고 하기에 책상에 놓인 스탠드를 켰다. 그런데 그건 또 눈부시다고 하기에 스탠드에 초록색 수건을 덮어보았다. 그랬더니 방안에 초록빛이 은은하게 퍼져 제법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 씨는 잠이 안 오는지 몸을 뒤척이면서 나에게서 작은 이불을 끌어당겼다. 나 역시도 이런 상황에서 잠이 올 리가 없어 곰팡이가 슬은 천장의 격자무늬를 바라보며 멀뚱히 있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싶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한 씨도 몸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결국 나처럼 천장을 보고 눕더니 귀신 이야기를 또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에도 귀신을 본 적이 있어요, 군대 갔다던 삼촌이 귀신이 되어서 돌아왔어요, 삼촌은 대학생일 때 방을 구하지 못해서 저희 집에서 저랑 같은 방을 썼었거든요, 저는 삼촌이 좋았어요, 삼촌이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호떡이나 붕어빵 같은 주전부리를 사와서 같이 이불을 덮고 만화책을 보면서 먹고는 했어요, 한 번은 내게 시를 썼다며 읽어주었는데, 듣다가 너무 유치해서 그만 웃음이 터졌어요, 삼촌이랑 저는 한참을 그렇게 웃었어요, 라고 말하며 한 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말없이 천장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 삼촌이 군대에 갔다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하지만 또 그때는 어린 마음에 자살이라니, 왠지 그것도 멋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삼촌이 누웠었던 자리까지 차지하여 다리를 쭉 뻗고 자고 있는데, 누가 깨우는 거예요, 삼촌이 귀신이 되어서 온 거예요, 엉엉 울면서 자기 자살 안 했대요, 맞아 죽었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 동안 저를 찾아왔는데 제가 삼촌 귀신이 올 때마다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고만 있었어요, 그랬더니 제풀에 지쳤는지 결국 더 이상 안 찾아 오대요, 어느 날부터 안 온다는 걸 알고 나서는 되게 미안해졌어요, 그래도 갈 때는 간다고 인사라고 하고 가지, 이제 정말 영영 못 보는 건가 싶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한 씨가 갑자기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흠칫 놀라 한 씨의 불룩한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러고 있으니까 그래도 덜 무섭네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씨는 잠이 들었다. 나는 한 씨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어 이불에 문질렀다. 나는 아침이 되면 빨리 약국으로 뛰어가야겠다, 라고 다짐하여 뜬 눈으로 지새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든 것 같다. 정오가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내 눈에 한 씨가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리벙벙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하얀 비닐봉지가 입을 벌리며 널브러져 있었고, 그 사이로 파, 스팸, 생수, 과자 등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가 먹은 것 같은 천하장사 소시지의 주황색 껍데기도 보였다. 내가 무엇 하나 빠진 것이 있는지 또 더하여 진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으니, 한 씨가 이제 일어났어요? 늦잠을 많이 자는 편인가 봐요, 라고 말을 걸었다. 안 일어나면 저 혼자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라면 하나 더 넣어야겠네요, 라고 말하여 그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보는 그의 미소와 보글거리는 물 끓는 소리가 나의 신경을 자극했다. 한 씨보다 먼저 일어나 약국으로 달려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하여 속으로 나는 참 병신이다, 라고 되뇌었다. 내 뺨을 때리고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에 안 가쇼? 라고 그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는데 그마저도 목소리가 갈라져 우스꽝스럽게 되었다. 나는 헛기침을 크게 몇 번하고 이제 그만 집에 가시오, 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척 하며 가만히 있다가 끓고 있는 라면을 젓가락으로 저으며, 당신도 작가인가요? 라고 물었다. 나는 거인의 주먹으로 정수리를 맞은 듯이 정신이 번쩍 들어 벌떡 일어나 책상 위에 놓아든 습작노트를 확인했다. 미처 저 인간이 내 노트를 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무척 불쾌하여 화가 났다. 소설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먹으로 저 인간의 뒤통수를 내려치고 싶었다. 끓고 있는 라면도 엎어버리고 저 인간의 궁둥이를 발로 차서 문 밖으로 내쫒고 바닥에 엎어진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온갖 모욕을 주는 상상을 하며 노트를 책상서랍으로 집어넣었다. 머릿속에서 그를 짓밟아주고 나니 막상 밥상 위로 뜨거운 냄비를 종종 거리며 올려놓는 한 씨를 보았을 때는 조금 누그러진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쾌한 기분은 남아 있어, 다른 사람의 사적인 물건을 주인의 허락도 없이 보는 것은 개념 없는 짓입니다, 라고 한 씨를 향해 말했다.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보려고 본 것은 아닌데, 작가 선생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내가 선생의 글을 베껴가거나, 선생의 글을 평가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저는 제 세계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호기심에 공책을 열어본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으며 한 씨가 끓여온 라면을 묵묵히 먹었다. 이제 와서 한 씨를 떠올려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한 씨가 나를 일부러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슈퍼 주인에게 약국집 가족들은 어디에서 사는지를 물어보았는데, 한 씨가 살고 있는 집은 내가 살고 있는 집과 그렇게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씨가 살고 있는 빌라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약국을 지나고, 세차장을 지나고, 교회와 내가 자주 가는 슈퍼를 지나고 길을 한 번 건너야 한다. 거기에다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 건물에서도 3층이기 때문이다. 한 씨가 귀신을 보고 무작정 도망친 곳이 여기라니,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제는 한 씨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는 섬뜩하면서도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한 씨는 나 또한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여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는데, 내가 나가려는 시늉만 하더라도 한 씨는 무섭다느니, 귀신이 올 거 같다느니, 나를 내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느니 하면서 나를 붙잡아두는 것이었다. 나를 무슨 엄마처럼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마냥 생각하는 한 씨가 그때는 또 측은해져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나가는 척만 해도 벌떡벌떡 일어나며 놀라는 것이 똥개훈련을 시키는 것 같아 재미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나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마시려는 거요, 나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볼 일 좀 보려는 거요, 하며 그의 바보스러운 모습을 구경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내가 불쌍한 미친놈을 데리고 무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책상에 가만히 앉아 한 씨가 펼쳐버리고 만 습작노트를 부여잡고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골몰했다.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이란 일종의 미래소설인데, 모든 인간이 바이러스에 걸려 어른들은 다 죽고 아이들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 아이들도 10살이 넘어가는 해에 온몸이 바이러스에 잠식당해 죽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아주 어린아이들만이 남아서 세상을 헤쳐 나가고 그들끼리의 규칙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못하고 턱 하고 막혀 버려 나는 소설을 이어가지 못한 채 고민만 하고 있었다. 습작노트에 이런 저런 경우들을 생각해가며 끼적거리다가 한 페이지를 북 짖어서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바닥에 앉아 내 방에 있는 책들 중 하나를 펴서 읽고 있던 한 씨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제가 도와드릴까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읽고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남은 아이들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건 어떨까요? 그 아이들은 결국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라고 한 씨가 내 소설의 다음 내용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참견이었다. 그가 이어서 또 무슨 말들을 중얼중얼 거렸다. 그가 나의 습작노트를 열어본 것에 대해서 잠시 누그러졌던 화가 배가 되어 내 머리를 짓눌렀다. 그렇게 잘 아시면 당신이 직접 쓰시오! 라고 말하며 나는 내 습작노트를 한 씨 쪽으로 집어 던졌다. 노트가 두 날개를 펼치며 한 씨 앞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를 한번 노려보고 돌아서버렸다. 그러고 한참 있으니 한 씨가 습작노트를 집어 내 책상에 올려놓으며, 아무래도 그건 별루이지요? 라고 말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밤이 되어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요를 깔고 한 씨와 나는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방 안의 불을 다 꺼버렸는데도 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내일은 반드시 한 씨보다 먼저 일어나서 이 사태로부터 벗어나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렇게 있다가 살짝 잠이 들려고 하는데 한 씨가 또 삼촌 귀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제보다는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한 번은 삼촌이 낮에도 찾아온 적이 있어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이었어요, 맨 뒷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고 있는데 삼촌이 나타나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삼촌이 말하길, 사귀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거 같다고 하였어요, 그러면서 책상 서랍 맨 아래 칸 구석에 그녀에게 주려고 한 선물이 그것을 그녀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삼촌에게 아무 말도 못했어요, 햇빛이 하얗게 통과되는 삼촌의 처참한 몰골이 참 안 되었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라고 말하고 나서 한 씨는 코가 막히는지 킁킁거렸다. 집에 가서 서랍을 뒤져보았는데 아무리 뒤져도 선물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삼촌은 나를 골탕 먹이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때 삼촌과 같이 누웠던 요에 누워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라고 말하며 한 씨는 킥킥거렸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삼촌 귀신이라는 게 정말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대낮에 버스를 쫓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조카에게 말을 거는 귀신이라니, 있을 법하지가 않았다. 버스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뛰어가는 귀신의 이미지가 떠오르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고약한 유머로군, 내가 이런 말을 정말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쩌다가 동네에서 나를 몇 번 마주치고는 만만하게 보여 골탕을 한 번 먹여보고 싶었던 거로군,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려보내주지, 다시는 날 아는 척 하지 마라,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에게 등을 보이면서 돌아누웠다. 한 씨가 잠자코 있다가 한 마디 하였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요, 서랍에 삼촌이 나에게 가끔 읽어주던 시집이 있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설마 그녀에게 주려던 선물은 아니었겠지요?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또 다시 눈을 번쩍 뜨고, 아,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한 씨가 누워있던 자리를 보니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알아서 나가준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 참에 화장실에서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났다. 그는 조용히 화장실에서 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틀렸구나, 나는 역시 구제불능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한 씨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어요? 라면 끓일까요? 한 씨가 멋쩍은 듯이 웃으며 내게 말하였다. 설익은 라면에 쉰 김치를 올려 먹으면서 나는 이번에는 한 씨와 좀 싸워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한 씨 같은 인간이 뭐가 무섭다고 나는 그를 봐주고 있었던가,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참 나약하고 얼빠진 인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김치 조각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았는데 한 씨 젓가락과 맞부딪혔다. 나는 젓가락을 빼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 할 일이 있는 사람이오, 이제 그만 내 집에서 나가 주시오, 나는 당신 때문에 글도 못 쓰고 이틀 밤을 보냈소, 그러니 당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셈이오, 당신도 인간적인 결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쯤 하고 나가는 것이 옳지 않겠소? 옳지 않겠소, 라고 말할 때 나의 목소리가 갈라져 우스운 모양이 되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한 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씨가 이렇게 말했다. 나와 지내는 것이 불편한가요? 당연히 불편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 마냥 묻고 있으니 무척 불쾌해졌다. 이렇게까지 내가 말했다면 네, 이쯤에서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언제까지 남의 집에서 기생충처럼 살고 있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나는 아주, 많이, 매우 불편하오, 라고 또박또박 그에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조금 더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분간 있는 듯 없는 듯 같이 지내면 안 될까요? 아직도 귀신이 있을까봐 무섭습니다, 그 귀신이 저를 잡아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직 써야할 원고도 있는데 귀신에게 잡혀갈 수는 없어요, 제 주인공은 아직도 적당한 의족을 맞출 가게를 찾지 못했어요, 다들 사기만 치려고 비싼 값을 부르면서 딱 맞는 의족을 맞춰줄 생각을 하지 않고, 적당하게 아무거나 맞춰주려고 하고 있어요, 제 주인공이 가엾지도 않나요?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가 흠칫하면서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이 마치 불쌍한 표정을 지으려는 연기를 하는 것처럼 일그러져 나의 화를 더 돋우었다. 나는 일어나서 그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그만 나가주시오, 더 이상 같이 있는 건 내 한계를 넘는 일이요,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시오? 잘 모르는 사람이랑 이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언제까지 같이 지내란 말이오? 당신은 모친도 있고 모친이 하는 가게도 있지만 나는 내 몸과 이 방구석이 전부란 말이요, 왜 나에게 와서 이러는 것이요, 왜 나를 괴롭히는 것이오? 나는 내 앞에 놓은 한 씨가 끓인 라면도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치우는 것은 나의 몫이라 생각하고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한 씨가 다시 나에게 덤벼든다면 그때는 끝장을 보리라. 나는 달구어진 쇠가 된 것처럼 나에게 몰아쳐 온 분을 삭이지 못하였고, 이때에 이 인간을 정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정리되지 않을 것 같은 압박감까지 느꼈다. 그런데 그도 일어나면서, 아직 이틀밖에 되지 않았잖소,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급기야 싱크대에서 감 껍질이 달라붙어 있는 과도를 집어 들었다. 과도를 그에게 겨누며 나는 소리쳤다. 나가시오, 당장 나가! 이 미친 정신병자야, 당장 나가라, 너야말로 귀신같은 놈이다, 귀신보다 더한 놈이다, 내 삶을 파먹는 기생충 귀신같은 놈이다! 그는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당신의 아이들 이야기 있잖소, 아무래도 그 아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자유로운 세계를……, 라고 말하였다. 나는 나가! 라고 소리치며 과도를 휘둘렀다. 한 씨의 오른손이 칼끝에 걸려 베어졌다. 한 씨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움켜잡았다. 바닥으로 조금씩 피가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왼손으로 한 씨의 어깨를 떠밀면서 오른손으로는 문을 열고 한 씨를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잠가버렸다. 그런 소동이 있는 사이에 라면이 든 냄비가 엎어져 버렸다. 나는 나뒹구는 냄비를 발로 차고 정리되지 않은 이부자리에 다시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나는 행여 그가 문밖에 계속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며칠 동안 집밖에 나가질 못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온갖 귀신들이 내 방으로 모여드는 악몽까지 꾸었다. 내가 이쯤이면 집에 갔겠지, 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기를 한 씨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망상에 시달리며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스 점검하러 왔어요, 라고 하며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그때야 비로소 나는 문을 빼꼼히 열고 한 씨가 문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떤 모양새로 집에 갔을까? 나는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다친 손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처량하기 그지없는 한 씨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약국집 부인은 그 꼴로 집에 돌아온 한 씨의 등짝을 후두려 팼을 것이다. 귀신이 무서워서 다른 사람 집으로 피신 갔다가 쫓겨나서 돌아왔다고 말하는 애처로운 한 씨를 약국집 부인이 나가, 라고 소리치며 다시 쫓아내는 모습 또한 나의 상상 속에서 그려졌다. 동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마 한 씨는 나를 슬금슬금 피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때는 내가 좀 심했소, 라고 말하며 한 씨에게 악수를 청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마지막 남은 담배를 피면서 한 씨도 참 불쌍한 인간이지, 라고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라고 말하며 슈퍼 주인은 내 손에 거스름돈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특유의 오지랖으로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라고 말하며 서글서글한 건지 능글능글한 건지 헷갈리는 눈웃음을 내게 지어 보였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알 수 없는데, 여행을 갔다 왔다고 말했다. 어머, 어디로 갔다 오셨는데요? 슈퍼 주인의 눈이 잠깐 빛났다. 생각나는 대로, 그리스요, 라고 말했는데, 내가 봐도 어이가 없어서 그럼 수고하시오, 라고 말하고 도망치듯이 나와 전봇대에 기대어 방금 산 담배의 포장지를 뜯었다. 슈퍼 앞에서는 오늘도 수다꾼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슈퍼 주인이 막걸리 두 병을 들고 나오면서 술판에 합류하였다. 그래서 보험금 좀 나온대? 한 수다꾼이 다른 수다꾼에게 술을 따르며 물었다. 질문을 받은 수다꾼은 마른 오징어에 초장을 찍어 잘근잘근 씹으면서 대답했다. 나도 뭐 얼마나 나오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좀 애매하다고 하더라고, 자살인지 사고인지가 중요하대, 배달부 말로는 갑자기 그놈이 뛰어들어서 자기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는 거야, 근데 그놈이 정신이 온전치 못했잖어,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는 반은 자살이고 반은 사고여. 보험금 그거 얼마나 나온다고, 슈퍼 주인이 말을 받았다. 참 그 집도 딱하다 그치? 남편도 교통사고로 죽었다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것도 그렇게 갔으니, 이제는 누굴 보고 살어? 그러자 한 수다꾼이 큰 소리로, 새로 시집가면 되지, 뭔 걱정이야? 하고 말했다. 그 소리에 좌중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급히 담배를 비벼 끄고 약국으로 달려가 보았다. 셔터가 내려진 약국의 문 앞에는 ‘喪中’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는 약국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새벽에 약국 문을 열지도 모르는 약국집 부인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던 것이다. 약국집 부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밤 날씨가 너무 추워, 나의 이러한 의지는 금세 꺾여버렸다. 나는 터덜터덜 걸으며, 내 소설 속 아이들이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고 서로 사랑하며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쁜 결말은 아닌 것 같았다.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도에 흰색 스프레이로 드러누운 사람의 모양을 표시해 놓은 것이 보였다. 두리번거리며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표시가 있는 쪽으로 가 보았다. 덩그러니 그려진 이 사람의 모양이 그의 것인가, 그것은 분명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곤히 자고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귀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깊은 구덩이를 들여다보듯 그것을 쳐다보았다. 한 씨가 귀신을 보고 내 방으로 달려오는 길에 여기 이 구덩이 같은 것으로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쓸데없는 상상이었다. 그때 차의 경적소리가 들려 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나를 밀쳐내기라도 한 듯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차가 멈추고, 차도에서 뭐하는 짓이야, 죽으려는 게냐, 라고 어려보이는 남자가 으름장을 놓더니, 다시 쌩하니 가버렸다. 손이 까져서 피가 줄줄 흘러 나왔다. 그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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