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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206일, 세월호에 비친 한국정치
2015년 03월 16일 (월) 16:43:42 서복경(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gyozi@sogang.ac.kr
참사 206일, 세월호에 비친 한국정치 서복경(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4월 16일,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고, 지금까지 295명의 사망자가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9명의 실종자는 소식이 없다. 11월 7일, 세월호 참사 발생 206일 만에 ‘세월호 특별법(‘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에 따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앞으로 최소 1년 ∼ 최장 1년 9개월 법에 따르면,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은 1년 이내로 하되 위원회 의결로 6개월 연장할 수 있으며, 보고서 및 백서 발간활동을 위해 다시 3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동안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한 2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이다.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206일이 우리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직면했던 1라운드 과정이었다면, 지난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앞으로 전개될 2라운드 역시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206일은 긴 시간이다. 참사의 최초 충격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슬픔과 함께 한국사회가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나? 라는 의문과 좌절, 회의와 분노로 이어졌다. 감사원 감사결과, 국회 국정조사 결과, 검찰의 사건조사 결과 발표가 이어졌지만, 사회적 합의에 입각한 출구는 보이지 않은 채 점점 더 의문과 의혹은 커져만 갔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 혹은 의혹들은 한국사회를 여러 층위로 갈라놓았다. 사건을 대하는 정부, 여당, 야당의 태도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자체로 찬반을 둘러싼 갈등을 야기했고, 개별 정치인들의 여러 해석과 말들은 참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둘러싼 사회집단들을 호명했으며, 마침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회집단들이 직접 거리에서 갈등적 대면을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음모론과 사실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고, 언론·표현의 자유와 사실왜곡에 의한 비방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국가권력의 행위와 시민들의 자발적 행위들이 마구 뒤섞여 서로에 대한 음모론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한국사회의 현 주소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세월호 참사가 주는 교훈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는 2014년 한국사회를 뼛속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어주는 거울이다. 물론 같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도 우리는 모두 다른 측면을 보고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아마도 지난할 테지만, 그래서 세월호 참사 2라운드는 3라운드로, 또 4라운드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 지난한 과정 또한 세월호 참사가 주는 긴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내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세월호 참사는 사건발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참사 자체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정부의 구조행위를 둘러싼 의혹과 책임의 문제, 진상규명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반응과 해석의 문제를 포괄하는 매우 복잡한 퍼즐과도 같다. 이 글은 이 모든 과정에 직접 돋보기를 들이대는 대신, 한 발 떨어져 이 문제를 대면해 온 한국정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몇몇 지점들에 대한 단상을 전개해보려 한다. ‘특별법’을 통한 특별한 조사가 필요했던 이유 ‘세월호 특별법’제정은 정부기관의 참사 대응에 대한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불신으로부터 출발했다. 사고당일부터 진도 팽목항에서 구조를 애타게 기다렸던 가족들은 당국의 공식발표와 직접 목도한 구조 활동 사이의 극심한 괴리, 컨트롤타워가 없는 구조 활동에 대한 분노, 사고원인에 대한 불분명한 설명, 사후처리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당국의 태도 등으로부터 불신을 누적해 나갔다. 참사 발생 이후 언론을 통해 드러난 단편적인 사실들은 사고의 원인, 발발, 구조, 사후처리에 대한 시민들의 의혹을 증폭시켰다. 5월 16일, 청와대에서 이루어진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과정에서 유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조사를 요구했고, 대통령은 5월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까지만 해도 특별법의 내용은 구체화되지 않았으며, 국회 여·야당의 협상을 통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여·야당 간의 특별법 협상과정은 희생자에 대한 의사상자 지정, 대학 특례입학, 보상 및 배상금을 둘러싼 논란 등 진상규명에 대한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와 동떨어진 이슈들을 양산해냈다. ‘수학여행 간다던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유족들의 요구는 너무 앞서 나간 사후처리 대책의 타당성 논란에 묻혀 버렸고, 참사의 슬픔에 공감하고 진실규명과 근본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모아졌던 사회적 합의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대한변호사협회에 의뢰하여 독자적인 ‘세월호 특별법안’을 만들었고 7월 9일 입법청원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당초 7월 16일까지 특별법 제정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여·야당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협상의 진전이 없자, 7월 14일부터 희생자 가족들의 단식이 시작되었다. 광화문과 국회에서 출발한 특별법 제정 촉구 유가족 단식은 단식 40여일 만에 김영오씨가 병원으로 후송된 8월 22일까지 이어졌지만, 법 제정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족들은 8월 22일부터 장소를 옮겨 청와대 앞 청운효자동에 천막을 치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고, 전국 30여개 천막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일일단식이 이어졌으며, 주말마다 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긴 시간동안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특별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게 된 데에는,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정조사, 검찰의 진상조사가 내놓은 결과가 진상규명에 근접하기보다 의혹만을 증폭시켰던 데 기인한 바가 컸다. 감사원은 4월 29일부터 세월호 참사 관련 감사를 시작했고, 5월 14일부터 6월 20일까지 실지감사를 수행하여 7월 8일 중간보고를 발표했다. 감사결과는, ‘사건 발생 이전 청해진해운은 위법행위로 이윤을 추구했으며 관련 규제기관은 적절한 감독을 수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규제완화로 여객선박의 위험을 방조했으며 사건발생 직후 관계기관은 적절한 구조행위를 수행하지 못하여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그 책임은 수십 명의 말단 공무원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회 국정조사는 6월 2일부터 8월 30일까지 90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증인채택을 둘러싼 논란, 국정조사특별위원장의 유족 비난성 sns 메시지 논란 등에 이어 사건당일 대통령 7시간의 행적 미스테리 등의 의혹만을 남긴 채 종료되었다. 10월 6일 검찰은 그동안 진행해 왔던 세월호 수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사건당일 cctv등 관료자료 유실 경위, 승무원 노트북에서 발견된 국가정보원 보고 문건을 토대로 한 세월호와 국가정보원의 연관성, 유병언씨의 정·관계 로비의혹 등 이미 언론을 통해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했던 의혹들에 대해 ‘근거 없음’으로 발표하였고 100여명이 넘는 말단 공무원과 세월호 관계자 등에 대한 기소로 마무리를 지었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 국회 국정조사는 일상적인 사건조사와 책임규명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절차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도 남는 문제들은 특별한 절차를 통해 규명될 수밖에 없지만, 기존에 마련된 특별하지 않은 절차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과정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는 인명피해의 규모, 사건원인의 복잡성 등의 측면에서 매우 ‘특별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다루는 정치의 정상적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지난 몇 달 간 국회의 여야 정당들은 특별한 법을 만들기 위한 지난한 협상을 벌이는데 에너지를 소모했으며, 유족들은 법 제정을 촉구하며 길거리를 헤매야 했고 스스로 법안까지 성안해서 제출해야만 했다. 또한 수많은 시민들이 유족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주말마다 거리를 채워야 했다. 특별한 법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 엄청난 정치사회적 에너지가 소모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2라운드에서라도 특별법을 통한 특별조사, 이를 통한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특별한 사건을 다루는 특별하지 않는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방법이 고민되어야 한다. 차후에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되지만, 다른 형태의 특별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몇 달씩 피해자와 시민들이 거리정치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스템은 확실히 정상적이지 않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참사 2라운드가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이러한 절차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이유를 밝히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유족들은 왜 대통령을 애타게 불러야 했을까? 특별법 통과 이틀 전인 11월 5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청운효자동에 설치했던 농성천막을 걷었다. 가족들은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믿었’고,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과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천막을 쳤다고 밝혔다.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의 말은 5월 16일 유족들의 청와대 대통령 면담에서 직접 들은 말이었다. 지난 76일 동안 가족들은 20여 회에 걸친 면담신청서를 청와대에 제출했지만 단 한 차례도 면담을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농성장을 떠나면서 ‘앞으로는 대통령님께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닦아달라고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이 대통령은 찾은 건 8월 22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당국의 구조 활동이 지지부진할 때 희생자 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하겠다고 길을 나섰다가 경찰에 가로막힌 적이 있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을 진행할 때에도, 국회 여야당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대통령이 결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걸음을 옮기다가 역시 가로막힌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본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대통령은 어떤 의미였을까? 사고당일부터 당국의 구조 활동을 목도하며 분노하던 유족들에게 4월 17일 팽목항을 방문했던 대통령의 행보는 구조와 진상규명, 대책마련 모든 과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다가갔으리라.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가 모두 진상규명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정치권력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당의 협상이 전혀 진척을 보이지 못했을 때, 여기에 활로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사람 또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4월 17일 팽목항에서 ‘가족들의 요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해 주었고, 5월 16일 청와대 면담에서 특별법 제정이나 특검 등 유족들의 요구가 수용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으며, 5월 19일 특별담화에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요청한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끝까지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을 기대했던 유족들의 태도는 근거를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말은 허언으로 드러났다. 구조도 못했고 진상규명도 실패한 사람들은 옷을 벗지 않았으며, 스스로 책임을 물어 사임을 표명했던 총리는 유임되었고 역시 사임했던 장관은 여당의 공천을 받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행정부 산하 조직인 검찰의 수사는 결국 행정부 고위공직자 누구에게도 칼끝을 겨누지 못한 채 끝이 났다. 특별법 제정이나 특검 등 노력하겠다는 말은 지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회 특별법 협상에 여당 측 가이드라인을 제공함으로써 협상을 지연시키는 태도로 나타났다. 대통령은 왜 허언을 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집권당의 대표로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정치인이며, 세월호 참사 이전 권경유착을 실천하고 참사 이후 구조실패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정에서 조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에 따르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정치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처음부터 정당을 초월한 중재자나 갈등조정자가 아닌 이해당사자 위치에 있었다. 그는 사건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 등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정치인이자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 공직자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 당적은 없어지지만 집권당의 지방선거 승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당 정치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고 정당 정치인으로서 집권당의 지방선거 승리에 기여하고자 했던, 자기이익에 충실한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나온 그의 행적이 옳았다는 게 아니다. 유족들 앞에서 허언을 하고 돌아서서 그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이유, 지방선거 전인 5월 19일엔 특별법 제정을 요청했지만 지방 선거가 지난 이후엔 특별법 제정이 부담스러워진 이유는 국회에 모여 있는 300인의 정치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사회, 특히 언론은 대통령을 당파를 초월한 중재자나 정치적 갈등의 한 주체가 아닌 갈등조정자로서 위치지우고 모순적인 요구를 투영해왔다. 집권당의 후보로 선출되어 당선되었고 집권당의 국회활동으로 지원받아야만 행정부 수반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당파적 존재가 대통령이지만, 집권당의 이해관계와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념이든 지역이든 계층이든 특정한 지지기반에 의존해 당선되었지만 당선 후에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떠나 ‘모든 국민’의 대변자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그가 임명한 사람과 그의 지휘를 받는 관료의 과오나 실수, 위법행위에 대해 관리감독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그와 그가 임명한 자, 그의 통솔을 받는 관료로부터 그는 분리될 수 있는 존재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모든 다른 선출직 공직자들처럼 개인의 행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하는 임기제 공직자에 불과하건만, 그의 책임을 관료와 집권당에게 분산시키고자 한다. 언론과 주요 여론 형성자들의 이런 모순된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인식적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2라운드가 시작되면 다시 행정부 주요 부처와 청와대,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진실규명과 책임소재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 때 대통령은 임기제 선출직 공직자이자 정치인으로서 적절한 방법으로 진실규명에 협조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조사주체와 언론은 모순된 논리로 그에게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현직 정부와 자신의 과오와 위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인일 뿐이다. 그가 선거를 통해 위임받은 권력의 범위는 거기까지이며, 언론은 유권자들에게 이 사실을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 ‘당파와 갈등, 개인의 이익을 초월한 중재자’라는 대통령에 대한 비정상적 이미지가 정상화되어야 2라운드의 과정이 작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특별법이 제정된 이유 특별법을 통한 특별조사로 시작되는 세월호 참사 2라운드는 이제 시작이다. 어떤 과정과 결과가 기다릴지 알 수 없지만 긴 과정이 될 것이고 1라운드처럼 많은 어려움들이 산재할 것이다. 선례로 보아 조사 자체로는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6일 특별법 제정에 이르렀던 과정에서 정치적 교훈을 얻어낼 수 있다면, 참사 2라운드, 3라운드를 이끌어가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별법 제정을 추동한 1차적 힘은 희생자 가족들의 결사였다. 사건의 이해당사자인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팽목항에 모였지만 정부에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모임을 결성했고 논의를 거쳐 요구를 정식화했으며 단식과 시위, 방문과 기자회견이라는 지난한 행동을 조직했다. 정치사회적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전국을 돌며 지지를 구하고 서명을 받았으며 설득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 분들은 매우 특별하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였기에 생업을 팽개치고 몇 달 동안이나 농성천막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불행한 일은 다시 일어나선 안 되며, 우리사회가 자식 잃은 부모들이 거리를 헤매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한데 잠을 자지 않고도 자신들의 요구를 말할 곳이 있어야 하고, 언론은 이 요구를 보도할 수 있어야 하며, 동료시민들은 시위에 참여하고 어렵게 정보를 구하지 않아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얻어야 하는 교훈은 정부의 정책실패와 기업의 약탈적 이윤추구로부터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개인적 희생을 통해서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생업과 생활과 행복을 희생하지 않고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동료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는 정상적 경로를 만들어야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법 제정을 추동한 두 번째 힘은 동료시민들의 연대였다. 지금까지 50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국내외에서 서명에 참여했고, 시위에 참여했으며 지금도 동네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사건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피해자들의 다수는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사건이며 이런 형태의 대규모 연대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의 슬픔에 공감하며 서명에 참여하고, 주말나들이 대신 정례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며, 내 주변의 작은 모임들에서 논의를 조직하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었던 크고 작은 연대의 경험들은 그 자체로 세월호 참사가 남긴 소중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다양한 연대의 경험들은 있었다. 한진중공업 파업 지지,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에 대한 지지 등을 위해 전국에서 버스가 움직이기도 했고 여러 사회적 사건에 대한 서명은 이제 일상적인 활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처럼 대규모 촛불시위가 있었던 경험도 없지 않다.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고 공감했던 시민들의 연대는 그 규모나 지속시기 면에서 연대의 경험을 확장시켰고, 대규모 거리시위 참여형태만이 아니라 생활근거지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적인 연대의 경험을 만들어냈다. 시민들의 일상을 촘촘히 엮는 연대의 경험과 모임들은 민주주의를 진척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그 그물망을 통해 일상과 정치에 관한 정보가 흐르고 필요할 때면 공동의 시민행동을 조직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세 번째 힘은 선출된 대표들과 직업정치인들이다. 물론 이들은 국회의 협상에서, 국정조사에서, 희생자들을 제대로 대표하는 과정 곳곳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특별법 제정 과정에 가족과 수많은 시민을 불러낸 장본인들이다. 그러나 집단으로 그들은 무능했지만 개개인으로 그들은 정부로부터 꼭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이를 언론을 통해 유권자에게 알리며 시민들의 연대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 개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그들의 직업적 이해관계가 기여하게 만든 것이다. 다음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기 위해서 그들은 유권자의 지지와 표를 필요로 한다. 그들 가운데 누구는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구해 당선되고자 하겠지만 또 다른 누구는 특별법 제정에 찬성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구하는데 이해관계를 가진다. 이런 이들은 스스로 정보원이 되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모임을 만들어 시민들이 연대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기도 하며, 때로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유권자인 시민들은 이들에게 지지와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들의 직업적 이해관계가 좀 더 유권자에게 유리한 방향에 쓰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대의제 민주주의가 평범한 시민들의 이해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유권자가 직업 정치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들의 선의를 믿거나 존경할 수도 있지만 기능적으로 그들이 유권자의 지지를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당신들은 무능했으므로 앞으로 당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지금까지 무능했으므로 앞으로 유능해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지지와 표로 그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의 직업 정치인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 대안은 더 많은 직업 정치인을 키워서 그 가운데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더 나은 이들이 직업정치인을 지망할 수 있도록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 직업정치인들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고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에 적절한 보상과 제재를 제공하는 방향에서 직업 정치인의 기능적 필요성을 재고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2라운드에서도 시민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이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법 제정과정에 기여한 네 번째 힘은 언론이었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러했다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의 언론지형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시민들은 언론소비자로서 비판적인 기능뿐 아니라 건강한 언론에 대한 육성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언제나 언론의 진실된 정보와 거짓 정보의 사이, 의도된 왜곡과 실수 사이, 누군가에 의한 조작과 자발적 판단의 사이에서 언론을 선택하고 소비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언론을 대하는 방식은 더 많은 언론의 자유 속에서 더 나은 정보원을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정보인가를 판별하는 힘은 더 많은 언론자유 속에서 정보를 교차하고 비교하면서 비판적 정보해석능력을 얻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1라운드는 시민들에게 한국사회 언론지형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많은 언론자유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자유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대개 뭔가 숨겨야 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자유를 대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 사람의 인식을 나타내주는 지표가 된다. 세월호 참사 2라운드를 향하여 아직 규명되고 밝혀져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1라운드를 경험하면서 우리사회는 그 작업이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야기하고 단 한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했던 정치사회적 문제는 우리사회의 다른 문제들을 야기하는 원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업의 약탈적 이윤추구, 선출직 공직자와 관료들의 기업 유착, 무능하거나 의도된 구조 실패에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느라 바쁜 관료집단,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수동적일뿐 아니라 무능하며 당장의 정치적 이익에만 급급한 직업 정치인들, 명백한 왜곡보도에도 사과는커녕 후속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언론집단...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행태를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분명한 사실은 이들과 함께 한국사회를 구성하며 앞으로도 오랜 기간 살아가야 하며, 이들을 적절히 활용하거나 비판하면서 이들을 통해 문제해결에 조금씩 접근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옥석을 가려내고 약간의 진전을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생활과 생계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무엇이 올바른 정보이고 판단인지 동료시민들과 논의해야 하며, 때로 행동에 나서기도 해야 하는 긴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노력의 결과가 항상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한국사회에 살아가야 하고, 약간의 진전이라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 그 자체가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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