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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0
2014년 04월 30일 (수) 22:24:41 남호현 없음
《넋두리》를 통해 본 90년대의 대학과 사회 - ‘과방기록물’의 사료적 가치와 그 가능성 - 남호현 (사학 10) 최근 <응답하라 199X>와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유행이다. 작년에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응답하라 1997>라는 드라마를 제작하여 세간의 주목을 얻더니, 올해는 같은 방송사에서 그 후속작인 <응답하라 1994>을 내놓아 순간최고시청률 5.8%를 기록하며 케이블·위성·IPTV 통합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1) 마찬가지로 작년, 뭇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던 영화 <건축학개론> 또한 1990년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 부쩍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고,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비단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흥행성이나 캐스팅된 배우들의 인지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들의 배경이 되고 있는 ‘90년대’라는 시절이, 이미 우리들이 충분히 ‘추억’할 수 있을 만큼 먼 과거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또한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흥행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작품들이 모두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작품 소개의 중요한 키워드로 삼았다는 점 또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준다. 1990년에 태어난 필자도, 90년대는 유소년기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 진행과정에 비추어보았을 때에도, 90년대는 최초의 ‘평화로운’ 정권교체의 결과였던 ‘문민정부’의 탄생, OECD 가입, IMF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의 도입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처럼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해가자, 일군의 ‘예비 지성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한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던 대학생들 또한 이를 감지하고, 이에 편승하거나 때로는 저항해 가며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90년대 당시 대학생들의 삶의 모습의 일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사료’가 있으니,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넋두리》가 바로 그것이다. I. ‘넋두리’란? - 《넋두리》와 『넋두리』 《넋두리》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및 종교죽섹 소속 학생들에 의해2) 1988년부터 현재까지 종교죽섹의 과방에서 쓰여지고 있는 일종의 기록물이다. 《넋두리》는 대개 스프링 노트의 형태로 펜과 함께 과방에 비치되어 있다. 과방에 들르는 학생들은 과방에서 시간을 때우며 이 스프링 노트에 자신의 신변잡기적인 일들이나 고민, 학교 혹은 과(섹션) 내에서 발생한 일들이나 가벼운 유머 등을 적어놓고는 하였는데, 이것들이 모여서 쌓인 것이 지금의 《넋두리》가 된 것이다. 2013년 11월 현재, 《넋두리》의 125권이 지금도 계속해서 작성되고 있으며, 완성된 《넋두리》는 과방 한 구석의 수납장에 보관된다. 이처럼 1988년부터 현재까지 약 25년 동안 계속해서 쓰여 오고 있는 《넋두리》는 1991년과 2011년 총 두 차례에 걸쳐 『넋두리』라는 이름의 책자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즉, 《넋두리》가 그간에 종교학과(혹은 종교죽섹)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1차 사료’라고 한다면, 『넋두리』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내용들을 선별하고, 편집해 간행하였다는 점에서 ‘2차 사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두 차례 간행되었던 『넋두리』의 펴낸이는 각각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창립 20주년 기념사업회’와 ‘종교죽섹 27대 학생회 편지 홈커밍준비위원회’로, 이를 통해 『넋두리』의 간행이 모두 서강대 종교학과의 창립 20·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01년 발행된 『넋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실려 있어 2001년 당시 『넋두리』를 편찬하던 이들의 《넋두리》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넋두리는 1988년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과방에서 태어나 2001년 11월 현재 총 99권째를 이어온 종교학과와 인문학부 竹Sec 학우들의 솔직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90년대를 ‘상실과 탈주의 시대’라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기 넋두리에는 90년대를 관통해서 치열하게 살아간 대학인들의 모습이 진실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때로 좌절하고 때로 울먹였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넋두리는 그래서, 80년대 학번들에게는 후배들의 진지한 고민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하고, 90년대 학번들에게는 서로의 지난 모습에 대한 향수로 미소짓게 하고, 2000년대 학번들에게는 ‘박제되지 않은’ 날것의 대학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3) 위 내용에서 나타나듯, 『넋두리』의 편집자들은 《넋두리》를 대대로 이어져 온 ‘학우들의 솔직한 삶의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넋두리』의 편집자들은 분실된 《넋두리》의 1~9권을 제외한 나머지 83권의 《넋두리》의 내용들을 선별하여 이를 7개의 Chapter로 구분하였는데, 그 내용은 <표>과 같다. 위 <표>는 『넋두리 –첫 번째 이야기』의 각 Chapter별 제목과 그것에 대한 간략한 소개, 그리고 전체 Chapter에서 해당 Chapter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이를 바탕으로 보았을 때, 《넋두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과방을 중심으로 한 대학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우리는 90년대의 《넋두리》에 쓰인 글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90년대와 현재 사이의 공통점과 더불어 그 시대만이 지니고 있었던 특수성 또한 살펴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II. 《넋두리》를 통해 본 90년대의 대학과 사회 《넋두리》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당시 학교를 다니며 과방을 드나들던 종교학과(혹은 종교죽섹)의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계속해서 적어온 《넋두리》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대학생들의 삶의 모습을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봄 인사를 전합니다. 비록 시험이 우리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창 밖에는 조용히 내리는 봄비가 또다른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 사랑, 시위, 아르바이트, 학점, 술, 담배, 리포트, 투쟁, 최루탄의 매운 냄새까지도 있는 그대로 바라봅시다. 어차피 그들은 여기에 存在하고 있었고 우리의 삶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4) 위 글은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시점에서, 종교학과의 한 학우가 작성한 것이다. 캠퍼스 내에 벚꽃이 만개하는 시점에 맞추어 진행되는 중간고사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은 90년대 당대에나 20여년 후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이다. 이어서 이 학우는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하며 몇 가지의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는 90년대를 살았던 한 대학생의 시점에서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위 글에 제시된 요소들이 무조건적으로 당대의 대학생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요소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다른 필자에 의해 쓰여진 《넋두리》의 다른 글들에서도 “시험! 투쟁! 사랑!” 등과 같은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위 인용문을 통하여 당시의 대학생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요소들을 추측해 보는 작업이 그리 비약적이거나 무모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때 이 학우가 제시했던 요소들 중 사랑이나 아르바이트, 학점, 술, 담배, 리포트와 같은 요소들은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보았을 때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익숙한 것들이다. 하지만 시위나 투쟁, 최루탄의 매운 냄새와 같은 요소들은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있어 그리 익숙하지 않은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우리는 《넋두리》에 실린 한 편의 글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특히 9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학생운동’은 오늘날의 대학 풍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 시절만의 특수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는 특히 1987년의 6월 항쟁 이후 이루어진 직선제 개헌 등으로 인해,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활발하게 분출되었던 시대였다. 당시의 대학생들은 이러한 ‘민주화 운동’의 열기에 동승하는 한편, 학내에서는 등록금 투쟁 등을 비롯한 ‘학내 민주화 투쟁’을 벌여나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이러한 민주화 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대학생들에 의해 《넋두리》에도 여과 없이 기록되었다. “연대 도서관 앞, 수많은 서강학우와 서울지역 모든 대학에서 학생들이 집결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최루가스를 뒤집어 쓰고, 물대포를 맞으면서 … 애들이 강경대 학우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의 책임을 모르는 것 같다. 경대의 죽음에 우리는 책임이 있다. 우리가 양심을 팔고 현실에 타협할 때 그는 죽었다.”5) “왜들 목숨을 그리 쉽게 알까? 박승희 양. 자네 스무살에 참 많은 가능성이 있었을텐데. 죽은자를 모욕 내지 모략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가여워 보였다. 혹자는 반동적이고, 나약하며, 듣기 싫다고 쉰 목소리로 말할지 몰라. 그러나, 제발 죽음으로 그렇게 보상받으려 맡길 새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자기’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파괴해? 생명경시라는 전염병, 빨리 사라지길, 혈기와 의욕은 구별하며 뛰어야겠지. 하여튼 승희, 편안한 세상으로 가길. 경대도”6) 위에 제시된 두 개의 《넋두리》는 모두 1991년 봄, 당시 시위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인용문은 1991년 4월 26일, 당시 명지대 신입생이었던 강경대가 전경의 구타로 인해 사망하자, 그 이튿날 연세대에서 발생하였던 대규모 시위에 관련된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당시 연세대학교에는 1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모여 분노의 파도를 형성했다. 6월 항쟁 이후 4년 만에 서울 시내 명동은 다시금 최루탄 연기로 뒤덮였으며 강경대의 초상을 가슴에 품은 학생들은 비장한 얼굴로 경찰 앞에 맨몸을 들이밀었다. 정권은 전전긍긍했고 각 신문의 1면 내지 사회면 톱은 주먹 같은 글씨로 전국에서 벌어진 시위현황을 전하고 있었다.7) 그리고 4월 27일의 시위가 있은지 이틀 후인 4월 29일, 당시 전남대 신입생이었던 박승희가 집회 도중 몸에 신나를 끼얹고 분신자살한 사건8)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이를 접한 종교학과의 한 학우가 안타까워하면서 작성한 글이다. 이 날의 내용들이 담긴 《넋두리》 제 25권에는 분신한 박승희 학생이 남겼다는 유서 또한 인쇄된 채로 첨부돼 있었다. 이처럼 격렬했던 시위 현장에 직접 참여했거나, 시위의 소식을 접했던 당시 《넋두리》의 필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때로는 담담하게, 또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넋두리》에 적었다. 이는 당시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현장에서, 학생운동의 주인공이었던 대학생들에 의해 직접 작성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III. ‘응답하는’ 90년대, 《넋두리》의 사료적 가치와 그 가능성 이상에서 《넋두리》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넋두리》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1990년대 초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학생운동에 대한 《넋두리》 필자들의 인식을 살펴봄으로써 1990년대의 대학과 사회에 대한 당시 대학생들의 인식을 알 수 있었다. 《넋두리》에는 비단 학생운동과 관련된 내용들뿐만이 아니라 삐삐나 미팅, 대학의 풍경 등과 같이 당시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문화적인 내용들 또한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본고에서 모두 살펴보지는 못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의 논의를 기약해야겠다. 본 장에서는 결론을 대신하여, 지금까지 《넋두리》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던 점들을 바탕으로 하여 《넋두리》의 사료적 가치와 그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넋두리》는 1988년부터 시작하여 2013년 현재까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혹은 종교죽섹)’이라는 특정 집단에 의해 25년간 지속적으로 쓰여 왔다는 점에서 단순한 낙서장 이상의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서론에서도 잠시 언급하였듯이 1990년대라는 시기가 이제는 우리들이 ‘기억’해야 하는 과거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이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전하고 있는 《넋두리》는 이 시기의 사실을 전하는 하나의 ‘사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넋두리》에 대한 논의를 보다 확장시켜, ‘과방 기록물’ 일반에 대한 논의를 이루어 나가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과방에 놓인 공책 등의 물건에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은 비단 《넋두리》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서강대학교 국제인문학부를 대상으로 하여 이와 같은 ‘과방 기록물’의 존재를 조사해 본 결과, 국제인문학부에 소속된 매· 난·국 ·죽·A·B·C의 총 7개 섹션 중 총 6개의 섹션에서 《넋두리》와 유사한 형태의 ‘과방 기록물’들의 존재가 확인9)되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다른 대학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넋두리》와 유사한 형태의 ‘과방 기록물’들 또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을 통틀어 ‘과방 기록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범주화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단 《넋두리》뿐만 아니라 비슷한 형태의 기록물들을 ‘과방 기록물’과 같은 하나의 범주로 설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지나간 1990년대를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들이 어떻게 사회를 바라봐 왔는가에 대한 당시 대학생들의 생생한 ‘응답’을 듣는 것 또한 가능해 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방 기록물’들이 비록 90년대 당대의 기록을 충실하게 전하고 있는 ‘1차 사료’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정 집단에 의해 생산된 기록물이기 때문에 그 내용들을 모두 당대의 ‘역사적 사실’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러한 부분들은 동일한 시기를 다룬 전문적인 연구들을 통하여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넋두리》를 비롯한 ‘과방 기록물’들은 처음부터 그것이 사료로서 취급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한 시대에 대한 특정 집단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과방 기록물’들은 우리들이 회상하고 싶어하는 시절에 대한 향수를 그 시절의 언어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향수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 될 수 있다. 역사학계의 거대한 논쟁거리 중 하나인 ‘미시사와 거시사’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 독일의 사회학자인 크라카우어는 “미시사를 동반하지 않는 거시사는 이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될 수 없다”라고 한 바 있다. 또한 『치즈와 구더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미시사학자 카를로 진저부르그는 “미시사의 연구 중점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을 행동하는 인간, 즉 자기들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데 있다”라고 하였다. 근대 이후 역사학계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미시사’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에도 《넋두리》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대한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과거(90년대)를 살았던 일군의 사람들(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사람들로 대표되는 일군의 대학생들)의 목적과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언제나 과방 한 구석에 놓여있으며 25년 동안 끊임없이 종교학과(죽섹) 사람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아왔던 《넋두리》가, 이제는 역사학계의 고전적 명제인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도 훌륭한 사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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