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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될 것인가, 괴물에게 먹힐 것인가.
2014년 04월 30일 (수) 22:23:37 조성민 milkechoti@naver.com
괴물이 될 것인가 괴물에 먹힐 것인가? 조성민 편집위원 (milkechoti@naver.com) 들어가며 연예계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SM’이나 ‘YG’, ‘JYP’ 등의 브랜드를 들어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회사의 이름이자 브랜드 자체의 아이덴티티로서도 기능하는 이 이름들은 음반 산업을 주축으로 하는 연예기획사들의 이름이다. 이 세 회사 중에서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는 90년대 중반에 등장1)해 이제는 20~30대에게도 익숙할 ‘아이돌 팬덤 문화’를 기반으로 대기업으로까지 성장, 명실공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1인자로 군림하고 있다. 2013년 8월 9일, SM은 울림엔터테인먼트(이하 울림)를 인수합병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정확히는 SM의 자회사인 SM C&C가 울림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의 인수합병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대중문화 분야 역시 빠르게 산업화 되면서, 여러 연예기획사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것이 벌써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 20년 역사의 산 증거가 바로 한국에서 ‘기획사’의 개념을 거의 최초로 도입한 SM일 것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연예 인재를 발굴·육성 및 관리하는 운영 방식은 지금이야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한국에서는 무척 생소한 일이었다. 그렇다. SM은 사실, ‘원시 경제’에 가깝던 연예계에 ‘기업 논리’를 도입해온 셈이다. 그리고 SM스스로도 연예시장에 역시 처음 도입된 그 논리 안에서 생존해내기 위해 백지 상태에서부터 지금의 자리까지 아등바등 올라왔다. 그렇게 대중음악계의 ‘괴물’이 된 SM과, 이제는 괴물의 일부가 된 울림엔터테인먼트에 대하여. 1. 괴물의 탄생과 성장 SM 소속의 첫 아이돌그룹인 H.O.T.가 데뷔한 1996년까지만 해도 SM은 변변한 회사 소유의 차량도 없어 소속 가수들이 트렁크에 실려 이동했다는 경험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H.O.T.가 전대미문의 인기를 기록하면서 SM의 경영 방식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SM의 경영방식을 모방한 연예기획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와중에도 어떤 회사들은 사업 영역을 확장해 규모를 키워나갔고, 어떤 회사들은 사라지거나 다른 회사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분명 수도 없이 많은 기획사들이 존재했다. 대중문화 분야의 특성상, 기획사의 이름은 브랜드화 되고, 기획사가 제작하는 컨텐츠의 내용을 결정하는 장르적 요소로까지 작용한다. 이를테면, SM은 SMP2)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는데, SM으로부터 SMP라는 용어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수많은 평론가들로부터 비웃음을 샀지만 지금은 오히려 평론가들이 먼저 SMP가 하나의 장르로서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기획사들의 성립은 곧 가요계의 다양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실제로 H.O.T.가 해체하고 여러 1세대 아이돌그룹들이 활동을 멈추거나 끝내게 되는 2000년대 초부터는 R&B, 락, 힙합 등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주목받았다.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유행하는 동안, 오직 아이돌 댄스 음악만을 다루었던 SM은 약간 주춤하는 듯 보였다. 잇달아 내놓은 보이그룹 ‘블랙비트’와 걸그룹 ‘밀크’, ‘신비’의 실패는 아직도 SM의 ‘흑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연말 동방신기가 데뷔하고 가요계는 다시 한 번 아이돌의 시대를 맞게 된다. 2세대 아이돌의 개막을 알린 동방신기의 데뷔는 철저히 기획력에 의존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획력이란 SM이 H.O.T.부터 보아까지 성공시켜오면서 쌓아온 노하우에 자본력이 더해진 것이었다. 보통 5명 정도의 다인조 댄스그룹 형태의 아이돌그룹은 사실 막대한 자본이 없다면 데뷔조차 할 수 없다. 데뷔 자체는 물론, 데뷔 이전의 트레이닝과 데뷔 이후의 음반 기획과 프로모션까지의 비용을 모두 합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2세대 아이돌부터는 연습생으로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는 기간이 보통 길게는 6~7년, 짧게는 1~2년 정도에 달한다. 그 동안 받게 되는 모든 교육 등의 비용은 회사가 투자의 개념으로 부담한다. 따라서 그 비용을 충당할 자본이 없는 기획사는 아이돌 그룹을 데뷔조차 시킬 수 없다. 다시 말해, 2세대 아이돌의 개막을 알린 동방신기부터는 아이돌 시장이 자본력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에는 SM을 비롯하여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들이 KMP홀딩스라는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KMP홀딩스는 음원을 비롯한 미디어 컨텐츠를 유통하는 기업으로, 그 동안 자체적인 유통 루트를 보유하지 못했던 여러 연예기획사들이 유통사업에도 뛰어든 시도였으며, 현재는 KT뮤직에 흡수되어 더욱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컨텐츠의 생산만을 담당하던 종래의 연예기획사들이 유통망까지도 확보한 ‘미디어 그룹’이 된 것이다. K-pop 한류 열풍을 선도하는 다수의 아이돌그룹이 소속된 SM등의 거대 기획사들은 이제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몇몇 지면 매체가 그토록 되기를 희망하던)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거듭나고 있다. H.O.T. 데뷔 이후 16년이 지난 2012년 8월 18일, SM은 ‘SMTOWN LIVE WORLD TOUR III in 서울’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MUSIC NATION SMTOWN’이라는 가상 국가를 건립한다는 선포를 하기에 이른다. ‘문화제국’에의 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날 선포식에는 이수만 회장을 포함한 SM의 모든 아티스트들이 등장해 SM 가상 국가 설립을 자축했고, 행사 참여자들에게는 SM의 브랜드 컬러인 분홍색의 여권이 지급되었다. SM 소속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공연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어왔지만, ‘국가 선포’ 따위의 퍼포먼스(?)가 행해진 것은 처음이었다. 가상국가 선포에 앞선 2012년 5월, SM은 BT&I를 비롯한 몇몇 여행사를 인수해 SM C&C(SM Culture & Contents)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에 집중하는 SM엔터테인먼트와 달리, 연예를 비롯한 각종 문화상품을 개발하는 SM C&C는 여러 소규모 회사들을 인수하거나 기성 연예 스타들을 영입하는 방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2012년 8월 17일에는 개그맨 출신의 유명 MC 강호동과 신동엽, 전속계약을 맺어 영입하였고, 9월 19일에는 개그맨 김병만, 이수근까지 영입한다. 또한, 배우 장동건의 소속사인 에이엠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여 여러 개그맨들과 배우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2013년 3월 14일에는 KBS ‘남자의 자격’과 ‘인간의 조건’ 등을 제작한 방송프로그램 및 영상 컨텐츠 제작사 ㈜훈미디어를 합병해 본격적으로 컨텐츠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SM C&C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반드시 SM 혹은 SM C&C 소속의 연예인이 고정으로 출연한다. SM C&C가 제작을 맡은 드라마는 항상 SM 소속의 배우들이 주연을 맡고 있으며, OST에도 SM 소속 가수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강호동을 주축으로 하여 SM C&C 소속의 개그맨들이나 SM 소속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끼워팔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SM C&C의 외주제작은 제작된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것과 상관 없이 그 제작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편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수가 제한적인 방송상품의 특성상, SM C&C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증가할수록 방송국 자체제작 프로그램이나 다른 외주제작사의 프로그램이 편성될 기회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제한된 파이 내에서 SM의 영향력이 증가한다는 것은 시장 독과점의 가능성 역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 구역의 다른 괴물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점은, 이토록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간 기획사는 SM이 사실상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SM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획사로 꼽히는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사업 영역의 확장보다는 음반 프로듀싱이나 소속 연예인 매니지먼트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한 때 3대 기획사중 하나로 주목 받았던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인지도나 인기에 비해 회사 규모가 몹시 작아 사업 확장은커녕 회사의 유지도 종종 위태로운 상황이다. 컨텐츠 생산과 유통 시스템을 모두 갖춘 대형기획사 중에는 아이유 등이 소속된 로엔엔터테인먼트도 있는데, 이 경우는 SM과 반대로 음반과 음원의 유통 사업에서 음반 기획과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한 케이스로, 매니지먼트 방면으로는 좀 더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분명 SM의 성공 신화는 관련 업계에서 하나의 ‘공식’을 제시한다. 실제로 그 이후에 생겨난 거의 모든 기획사가 SM의 사업모델을 모방하고 있지만, SM과 똑같은 ‘괴물’이 되는 것은 꽤나 어려운 듯하다. 사업 규모를 확장하여 대기업이 된 SM과 달리 YG엔터테인먼트 등 다른 기획사들은 아직 중소기업의 규모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주목해볼만 하다. 지난 해 ‘강남스타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싸이 덕분에 처음으로 SM의 주가를 앞지른 YG엔터테인먼트도 올해에는 다시 SM에 역전당한 것을 보면, 분명 SM만이 업계 1위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혹자는 그것을 SM이 생산해내는 컨텐츠의 탁월성에서 찾겠지만, 앞서 언급한 적극적인 사업 확장의 실태와 그를 뒷받침하는 자본력을 보면 SM은 컨텐츠 자체의 퀄리티에 집중하기보다는 일정 이상의 수익을 항상 담보하는 마케팅에 더 큰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컨텐츠 시장을 독과점할 우려가 있는 또 다른 기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CJ E&M을 들 수도 있다. CJ E&M은 방송, 영화 등의 컨텐츠 제작 및 유통 사업으로 업계 1인자가 되었다. CJ E&M은 SM보다도 큰 자본규모로 CGV 상영관을 독점하고 있으며, 케이블 채널도 다수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독과정의 위험성을 일견 SM보다 더 커보인다. 그러나 분야를 ‘연예 매니지먼트’로 한정했을 때, CJ E&M의 경우 음악과 공연 사업을 담당하는 CJ E&M 뮤직·라이브가 음반 기획사였던 엠넷미디어를 계열분리했다가 재합병하는 등, 불안정한 경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음반 및 연예 기획 사업 측면에서는 CJ E&M 조차도 SM을 견제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방송과 영화 사업을 주력으로 운영하는 CJ E&M의 입장에서는 SM이 운용하는 소속 연예인들의 존재가 절실해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SM이 더 큰 권력을 가진 위치에 설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3. 괴물이 안 된 걸까, 못 된 걸까? 울림이 주목 받은 것은 동방신기가 데뷔한 그 때쯤부터였다. 2003년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데뷔를 시작으로 2006년 밴드 ‘넬’, 2007년 밴드 ‘러브홀릭’의 보컬이었던 지선을 영입한 울림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완성해내는 기획사로 자리잡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0년 봄, 울림의 첫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의 데뷔까지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인피니트! 당신은 나의 오빠>가 Mnet에서 방영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에픽하이 멤버들도 출연해 인피니트가 음악적 완성도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미지를 은연 중에 심어주었다. 인피니트가 데뷔한 2010년은 약 20여 팀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한 해이며, 2008년 샤이니와 2PM의 데뷔 이후 침체되어있던 남자아이돌 시장이 씨엔블루의 ‘외톨이야’를 필두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 데뷔한 대부분의 아이돌그룹은 시장에서 실패해 사라져갔으며, 인피니트 역시 데뷔 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 어려운 무명 시절을 이어나갔다. 인피니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2011년 하반기부터였다. 타이틀곡 ‘내꺼하자’를 수록한 정규 1집 이 리패키지를 합쳐 17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 발표한 앨범들 모두 10만 장을 가볍게 넘기는 판매량을 유지하였다. 한편 이 때 쯤 SM은 이렇다 할 신인 그룹 출시 없이 기존 그룹들의 기반을 잡는 데에 그치고 있었다. 2008년에 데뷔한 샤이니, 그리고 2009년에 데뷔한 에프엑스가 국내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해외로 진출해 있는 동안 인피니트는 꾸준히 성장했고, 2012년 울림은 약 20억의 흑자를 기록했다. 재미있는 점은 울림의 첫 아이돌 인피니트가 성장하는 과정이 SM의 첫 아이돌 H.O.T.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아이돌을 기획해본 경험이 없는 회사와, 열악한 환경 아래서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팀 멤버들, 그리고 거듭된 성공을 통해 후속 그룹의 지원에 나서게 되는 것까지, 울림은 SM의 전철을 밟고 있었다. 마치 H.O.T.가 SM의 위상을 견인하듯, 인피니트도 울림의 입지를 굳게 다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해냈다. 비록 시작은 건곤일척의 모험이었으나, 히트한 이후에는 꾸준한 성장가도를 달려나가는 행보는 사실 SM과 울림 뿐만 아니라 많은 성공한 연예기획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시장에는 ‘성공 신화’가 통용되기 시작했고 이 ‘성공의 공식’을 만든 것은 SM이었다. 이처럼 SM이 만든 성공의 공식을 가장 충실하게 따라갔던 것이 울림이었다. 사실 필자의 인피니트에 대한 첫 감상은 ‘SM의 신인 그룹인가?’였다. 반복되는 일렉트로닉 비트가 아닌 보컬 멜로디 위주로 편곡된 음악이나 고난이도의 절도있는 군무, 그리고 그룹 단위의 예능 출연 등, 인피니트가 지향하는 스타일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그룹들이 아닌, 90년대, 특히 SM 소속 아이돌그룹의 공식을 따르고 있었다. 소속사 최초의 아이돌인 인피니트의 그 동안의 행보와 성과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만약 SM과 합병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울림은 ‘포스트 SM’ 그 자체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몸집을 불린 회사가 그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규모를 유지하고 확장해나가는 지는 이미 앞서 충분히 언급한 듯하다. 4. 그렇습니다, 괴물과 괴물… 그리고 지난 8월 9일, SM C&C는 울림을 합병하기에 이른다. SM은 SM C&C를 통해 울림을 인수하면서 ① 여러 아티스트 레이블 구축을 통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서 발돋움하게 됨과 ②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영입해 SM의 음악적 다양화를 추구함, 그리고 ③ 중소규모 기획사인 울림에 대한 경영지원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한 -아이돌 팬이 아닌- 많은 사람들은 ‘SM과 울림의 합병은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SM과 울림의 수많은 팬들은 이 소식에 격분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울림 소속 아티스트의 팬들은 인수합병 발표 직후 일시적으로 패닉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과연 SM의 ‘명분’은 타당한지, 혹은 팬들의 ‘멘붕’이 타당한지, 지금부터 하나씩 들여다보자. ① 여러 아티스트 레이블 구축을 통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발돋움? 사실 대중음악 산업에서 큰 회사가 여러 레이블을 운영하는 형태가 그다지 생소한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형태이며, 사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매니지먼트를 해온 사례가 있었다. 가장 최근인 2010년에는 포미닛과 비스트가 소속된 큐브엔터테인먼트가 세계적인 음반 기업인 유니버셜 뮤직 그룹의 레이블로 제휴를 맺었다. 그러나 기존의 ‘레이블 제휴’는 사실상 유통 경로 확보의 의미가 강했다. 음반 제작사와 유통사가 별개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한국의 경우에는 ‘레이블’ 개념이 아직 생소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 시장 내의 두 기업이 이러한 형태의 합병을 진행하는 것은 SM-울림이 최초였다. 즉,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몹시 불확실한 상황이며, 음반 기획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강하게 작용하던 전통에 익숙해진 팬들은 울림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변화가 불가피 하지는 않을지 우려하게 되었다. 울림은 SM C&C와의 합병 당시 ‘울림ent. 사명(社名) 유지’와 ‘독자적 음악 활동 보장’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울림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성향이 바뀌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굳이 이러한 조건을 내밀지 않았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인수한 회사 측에서 매니지먼트상의 이유로 음악적 성향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이 한국 시장 내에서는 처음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미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해외 사례와는 달리 앞으로 변수가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②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를 영입해 SM의 음악적 다양화를 추구? 필자와 팬덤이 가장 분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대목이었다. SM은 이미 음악적 다양화를 시도했었다. SM에 소속되어 있는 포크 가수 추가열이나 비주얼 락밴드 ‘트랙스’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아티스트의 개발은 제쳐두고 다른 회사 소속의 가수들을 그저 SM의 음악적 다양화를 위한 제물로 삼겠다는 선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대로, 음반기획사의 브랜드는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적 이미지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대개 ‘사장님’이 최고 지위의 음반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중소기획사를 인수하는 것은 음악적 다양화를 오히려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앞서 언급한 인피니트의 경우에는 이 항목과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이미 SM에서 꾸준히 선보였던 ‘아이돌’이라는 장르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장르라고 해도 매니아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와 개성을 보이기 때문에 합병 이후 음악적 색깔에 변화가 온다면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넬 등의 아티스트들이다. 이미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둔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라피가 SM의 음악적 다양화와 정확히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것인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쉽게 말해, 넬의 음반에 분홍색의 SM 마크가 붙는 것이 SM이 말하는 음악적 다양화의 전부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울림의 아티스트들을 굳이 영입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③ 중소규모 기획사인 울림에 대한 경영지원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한다? 혹자는 이 부분에 대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울림이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SM C&C에 인수되어버린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돈 없어 팔려갔기 때문에 앞으로 SM빨 좀 받겠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추측을 내놓은 사람은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SM과 SM C&C는 자선단체가 아닌데, 울림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면 굳이 인수했겠는가. 오히려 울림이 2013년에도 28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던 반면, SM C&C는 2013년 1분기에만 영업손실 7억 5900만원을 기록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인수합병은 울림의 팬들로 하여금 큰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실 누가 더 돈이 많고 적은 지는 상관 없다. 수직적 구조 안에서 위에 있으면 ‘갑’이고 아래에 있으면 ‘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위 말해 충분히 ‘잘 나가고’ 있던 울림과 그 팬들 입장에서는 더욱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울림은 보도자료를 통해, 합병 훨씬 이전부터 여러 대형 기획사들로부터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고, 숙고 끝에 운영 재량권을 보장해준 SM C&C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오던 중소기획사는 왜 결국 대기업 산하로 들어가는 것을 택해야 했을까? 이것은 결국 대기업이 아니면 성장에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는 산업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5. 괴물은 어디로 갈 것인가? 혹자는 SM의 성장을 ‘탁월함과 노력의 산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유형의 재화가 오가는 다른 산업과 달리, 무형의 컨텐츠가 공유되는 대중문화 산업은 제품차별화가 더욱 절실해지며, 아무리 큰 자본이 투입된다 하더라도 창의성과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컨텐츠는 쉽게 외면당한다. SM의 야심작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흑역사’일 뿐인 몇몇 가수들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2013년 현재, ‘흑역사’도 벌써 10년 전의 일이 되었고, SM은 그 10년간 무패 신화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10년 동안 SM의 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졌고, 영역은 더욱 넓어졌으며, 컨텐츠는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국 ‘자본’에서 나왔다. SM의 흑역사는 사실 자본력의 부족이 한 원인이기도 했다. 시장 실패를 겪은 그룹들은 모두 주 수입원이었던 1세대 아이돌들이 해체한 이후에 기획되고 데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방신기의 데뷔 직전에는 보아의 일본 시장 석권이 있었다. 소녀시대와 샤이니 이전에는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가 연예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최근 EXO는 동방신기가 다시 일으킨 SM이 갖추어온 모든 시스템과 노하우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게다가 이제 SM은 유통망까지 갖추고 있다. 과거 기획사들은 컨텐츠의 유통 구조상 일정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SM은 독자적인 미디어의 개발에 힘써왔고, 결국 안정적인 유통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남은 것은 그 유통망 위에 컨텐츠를 실어 보내는 일 뿐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 독과점의 징후이다. 대중문화가 철저히 취향의 영역이라서, 그저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산업화를 거쳐온 이상, 산업 구조가 형성되고, 구조 안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따라서 그가 시장을 잠식해내가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아직도 ‘그래도 결국 노래가 좋아야 인기도 많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수년간 아이돌 광팬으로 살아온 필자가 첨언하자면, 특히 SM의 경우, 컨텐츠의 퀄리티와 상관 없이 브랜드 자체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팬덤이 아이돌그룹 자체의 팬덤과 별개로 존재한다. 마치 ‘아이폰이라면’ 혹은 ‘갤럭시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각각의 상품보다는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와 같다. 따라서 우리 주변의 아무도 듣거나 본 적 없는 신인 그룹이 데뷔하자마자 차트 1위를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SM은 1~2년 간격으로 한 팀의 신인 그룹을 출시해왔지만, 적극적인 레이블 합병을 추진한다면 앞으로 ‘SM표’ 아이돌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그 동안 충성도 높은 ‘SM 팬덤’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며, 결국 시장 내에서의 견제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6. 나가며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이 글은 화가 나서 쓰는게 맞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SM과 울림의 합병이 발표된 지난 8월 9일 오후, 필자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개최된 <2013 INFINITE 1ST WORLD TOUR ‘ONE GREAT STEP’>을 보러 가 있었고, 콘서트의 주인공인 인피니트 멤버들은 앙코르 무대에서 그 날 오전에 발표된 SM-울림 인수합병에 대해 언급한 뒤,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멤버 우현이 했던 말은 아직도 필자의 머리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사실 저희가 잘못한 건 없거든요. 여러분들에게 멋진 모습 보여드리려고 노력 많이 해서 이 자리까지 온거고. 저는 가끔 이런 콘서트를 만약에 못하게 된다고 상상하면 너무 가슴 아플까봐 매순간마다 여러분들과 추억을 계속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구요, (중략) 저희 월드투어 서울을 시작으로 해외에서도 멋지게 성공해서 올테니까, 여러분들 실망시켜드리지 않게 힘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항상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절대 큰 오해 같은 거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더 크게 될테니까요, 여러분들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살면서 꽤 많은 수의 콘서트를 관람해왔고, 특히 그 중 대부분은 아이돌 콘서트였다. 인피니트의 콘서트를 간 것은 문제의 8월 9일 월드투어 콘서트가 처음이었다. 많은 콘서트를 관람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8월 9일 콘서트는 여러 의미로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콘서트가 되었다. 입장 대기 중에 접하게 된 인수합병 뉴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했던 공연 퀄리티, 그리고 차분하게 소속사 문제를 설명했지만, 결국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물로 장식한 멘트까지, 어쩌면 티켓 가격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기분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학생 신분에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온 콘서트를, 콘서트 그 자체만으로 온전히 즐기지 못한데서 온 아쉬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소속사의 이전으로 필자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행보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지 걱정하게되는 ‘팬심’ 때문이 컸다.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종편채널 jtbc로 이적한 손석희 앵커를 두고, 언론계는 물론 대중들도 여러 의견을 내비치며 갑론을박 해왔고, 이적 직후에는 낙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훨씬 컸다. 물론 jtbc의 보도 성향이 손석희 앵커의 힘으로 변화한 이후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그러나 손석희 앵커가 jtbc에 계속 머무는 한, 대중이 신뢰해오던 그의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변화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는 줄어들지언정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사람이든 그가 속한 집단의 문화에 흡수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중음악계의 경우, 가수의 소속사 이전 이후 바뀐 음악적 색깔로 인해 팬층이 떠나간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SM-울림의 레이블화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그리고 다른 여러 기획사들과 가수들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아무 것도 쉽게 예상해낼 수 있는 것은 없다. 국내에서는 처음 보게 된 형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쨌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분명 인피니트가 잘못한 건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이 현상은 울림과 인피니트가 약해서도 아니고, 작아서도 아니니까, 정말로 ‘너희가 잘못한 것은 없다’는 이야기가 꼭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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