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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바로 우리의 문제
2014년 04월 30일 (수) 22:22:15 이여경 없음
밀양, 바로 우리의 문제 이여경(국문 10) 우리는 매 순간 다른 존재에게 빚을 지고 살아간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그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 의존의 대상이 가진 것 없는 약한 존재들이라면, 그리고 그 형태가 약자들을 착취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지어진 우리의 일상은 바람직한 것일까? 그러한 착취와 희생의 구조는 잘 드러나지 않아 지각하기 힘들지만 명백히 존재한다. 지금 송전탑 건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밀양 또한 그런 구조적 폭력이 행해지고 있는 자리이다. *** 밀양은 2005년 765kV의 초고압송전탑 건설이 결정된 이후, 8년째 주민들의 반대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점거, 단식 등 온갖 방식으로 투쟁을 해오고 있고, 2012년 1월에는 일흔네 살의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살까지 하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만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10월부터 다시 공사를 재개하면서 대규모의 공권력을 투입하여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공사를 막지 못하도록 공사장을 지키고 있으며,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매일 새벽 맨몸으로 산을 기어올라서 경찰, 용역들과 맞서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한전은 요지부동, 막무가내이고 투쟁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부상 당하고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 지난 10월 9일, 탈핵버스를 타고 방문한 밀양은 여전히 전쟁터나 다름없는 참담함 가운데 내던져져 있었다. 8일 저녁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밀양 동화전 마을입구에 도착했다. 밤의 동화전 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사방이 깜깜했고 비가 내려서인지 공기가 촉촉하고 상쾌했다. 하늘에 구름이 껴 흐렸는데도 듬성듬성 떠 있는 별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전날 태풍 때문에 공사가 잠시 중단되어 마을 분들이 모처럼 쉴 수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마을은 조용했다. 농사 짓는 사람에게 태풍은 절대 반가운 존재가 아닐 터인데, 오히려 태풍을 반가워하게 된 상황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삶의 자리를 파괴하는 자연 재해가 오히려 그들의 삶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모순은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부조 리한지를 반증하고 있었다. 밀양주민들에게는 정부와 한전, 그리고 이 사업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자들이야말로 삶을 파괴하는 재앙이다. 마을회관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5시쯤 일어나 조를 나누어 세 군데의 현장으로 향했다. 농성장에 계신 분들의 아침식사를 챙겨서 도착한 89번 현장에는 열 명 남짓의 주민들이 경사진 시멘트 바닥에 겨우 돗자리와 비닐을 펼쳐 놓고 앉아계셨다. 이미 경찰들도 도착해서 대기 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농성하는 이들은 한 줌인데 경찰의 수는 너무 많았다. 주민분들이 점거하고 있는 길은 공사장 주변을 지키는 경찰들의 교대근무를 위한 통로로 사용되고 있는 길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한전의 사업 진행을 위해 공사장을 지키러 가는 경찰들을 막고자 새벽부터 나와 그 비탈길에 앉아 계신 것이었다. 8시쯤 되자 중대장으로 보이는 경찰이 다가와 경찰들이 올라가야 하니 길을 비켜 달라고 말했다. 몇 번 시도하다가 움직임이 없자 경찰들은 점점 주민들을 물리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맨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들은 “경찰이 할매들을 지켜도 모자랄 판에 누구를 지켜주고 있는 기고!”, “우리는 국민 아이가! 우리도 국민이고 사람인데 와 이렇게 맨날 와서 괴롭히노!”라는 분노서린 외침을 내뱉으셨다. 몇 분은 이제 지쳤다는 듯이, 혹은 이제 남은 것은 몸뚱이뿐이라는 듯이 아무런 말도 없이 비탈길에, 그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우셨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소리를 지르고 몸으로 길을 막는 대치 상황이 이어졌고 결국 경찰들은 길 옆의 숲을 헤쳐 공사장 쪽으로 올라갔다. 한 차례 경찰과의 충돌이 지나가고 나서야 주민들은 비탈진 길에 비스듬히 앉아 아침에 우리가 가져간 차가워진 밥을 드셨다. 매일매일 이런 대치와 소강 상태가 반복된다고 했다. 휴일이다보니 연대하러 온 사람이 많아 큰 갈등은 없었지만 마을주민들만 있을 때는 폭언과 폭행이 심해진다고도 했다. 그리고 다행히 오늘은 밥차를 통해 음식을 배달할 수 있었지만 먹을 것이 전달되지 못해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날들도 많단다. 아침에 일어나 천천히 밭일을 하고 둘러앉아 참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지내셔야 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무엇 때문에 매일 아침을 분노와 욕설과 절망감으로 가득 채우며 보내야 하는 걸까? 송전탑 건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 사람들의 아침을, 삶을 빼앗아 처참히 짓밟는 것일까? *** 한국전력은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고리 3호기를 가동해야 하고,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량은 1,400MW로 총 전력 공급량(2013년 여름철 기준 8,100만kW)의 1.7%에 불과하며, 이는 사용량의 조절을 통해서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양이다. 즉, 신고리 3호기가 전력난에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적다는 것이다. 또한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는 기존의 선로의 용량증대를 통해서도 수송이 가능하다는 것은 지난해(2012년) 국정감사와 국회 공청회에서 이미 한전도 인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전이 신고리 3호기 가동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것이 원전수출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1) 신고리 3호기는 제어케이블 성능시험에 불합격해 가동이 미루어진 상태인데, 한전은 신고리 발전소 모델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계약 기간 내에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신고리 3호기와 송전탑 건설 문제를 급하게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밀양에 건설하려는 765kV 선로는 캐나다 퀘벡 주의 수력발전소들과 미국의 북동부 지역간을 잇는 1,000km대의 선로처럼 장거리송전에 주로 사용되는 선로로, 우리가 흔히 보는 154kV 송전선로보다 18배나 많은 전기를 보내는 초고압 송전선로이다.2) 따라서 자연파괴의 정도도 심하고, 전자파 문제도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밀양 구간은 송전로가 마을과 너무 가까이 지나가게 되어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건강도 위협 받게 된다. 이처럼 한전의 무리한 계획에 주민들은 생존권, 건강권, 재산권을 모두 침해 당하고 정상적인 삶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밀양 주민들은 계속해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우회선로 이용이나 지중화 등의 대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한전과 정부는 그런 주민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삶을 지키려 몸을 내던진 이들은 한전과 정부의 폭력과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매일 죽음에의 위협과 마주하고, 죽음보다 더 처참한 일들을 겪고 있다. 올해 5~6월에 걸쳐 진행된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밀양주민들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이 69.9%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9.11 사태 경험자들의 4.1배, 내전을 겪은 레바논 시민의 2.4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송전탑 건설 과정의 갈등이 사고, 전쟁에서 겪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심리적 충격을 주민들에게 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인권 유린과 폭력이 끊이지 않는 날들을 8년 동안이나 어떻게 견디고 지속해오셨는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주민들도 무력감과 고립감에 많이 지쳐버린 상태였다. 현장에서 만난 고준길 어르신은 요즘엔 그저 ‘이제 그만 하직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는데, 그 말을 하시는 어르신 뒤로 “다 죽이고 공사해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있었다. 그 문장이 꼭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처절한 유서처럼 느껴져 아프고 또 많이 죄송했다. 그분들의 마지막 소원은 “제발 이대로 조용히 살게 해달라”는 것뿐인데, 그 작고 절박한 호소를 들어주는 이들은 없었다. 경찰과의 대치 후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 남자가 트럭을 끌고 와서는 길을 비켜달라고 했다. 사과 밭에 가봐야 하니 비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사람과 마을 주민들 간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고 곧 싸움으로 번졌다. 얘기를 들어보니 트럭을 몰고 온 사람은 송전탑 건설을 찬성하는 쪽이고, 경찰과 손을 잡고 농성을 방해하기 위해서 매번 차를 끌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예전에는 갈등도 증오도 없이 함께 살았을 주민들 사이에 분열이 생겨나는 모습을 보니 씁쓸했다. 일방적인 국책사업으로 인해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은 빈번히 일어나는 일인데, 밀양도 그러했다. 싸움이 지속되면서 점점 지쳐가다가 결국 보상금을 받고 땅을 내놓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생겨나면,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마을이 두 동강이 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을 공동체의 붕괴는 무엇보다 송전탑 건설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다. 실제로 주민들은 경찰, 한전, 용역과 싸우는 것보다 가족 같던 마을 주민들과의 갈등이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심지어 부모 자식, 형제 간에도 갈등을 겪는 상태다. 그리하여 밀양 주민들은 국가에 의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까지 총체적으로 강탈 당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밀양 주민들을 향해서 ‘지역이기주의다,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한 수작이다.’라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밀양을 찾아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이분들의 처절한 몸짓을 본다면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8년 동안이나 단지 보상금 때문에 이런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재산권만이 아니라 생존권, 인권을 빼앗긴 것이고, 삶의 그러한 당연한 조건들까지 위협하며 진행되는 송전탑 건설의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의 전력 자급률은 200~300%에 달하는 반면, 서울의 전력 자급률이 2.8%라는 사실을 본다면 이기적인 도시는 밀양이 아니라 바로 서울(대도시)임을 알 수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시골 사람들의 삶을 착취하면서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분들은 오히려 삶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며 우리의 미래를 지켜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기적인 자들은 누구인지, 누가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밀양에 빚지고 있음을, 그리고 밀양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 부당한 일임을 깨닫고 밀양으로 달려가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부 언론에서는 ‘외부세력’이라는 말로 폄하하고 있다. 또한 현장의 경찰들도 연대자들을 향해 "아무 상관 없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이 문제가 절대 '아무 상관 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송전탑 문제는 단순히 송전탑이 세워지는 땅, 즉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도시와 지역 간의 종속적인 에너지 권력 구조의 문제이고, 국가와 자본에 의한 국민의 인권 침해문제이며, 크게는 핵 발전과 환경파괴의 문제까지 이어지기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밀양은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이미 우리에게 닥친 문제이다. 한국이라는 땅 위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지역간 불균형과 착취의 문제에서 언제나 직·간접적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일 수밖에 없고, 밀양에서 위협받고 있는 권리는 바로 우리의 국민으로서의 권리이며, 핵 발전으로서 인해 파괴될 땅이 바로 우리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밀양 사태에서 ‘외부인’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의 땅이고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미래가 아닌가? *** 짧은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을 때, 한밤중에도 건물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24시간 꺼지지 않는 간판 조명들 위로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겹쳐졌다. 익숙하고 당연한 풍경이었는데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내 방 한 켠에서 돌아가고 있는 냉장고나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도 그러했다. 그러나 단순히 개개인의 전기 사용에 그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중앙집권적 에너지 구조의 주범이자 최고 수혜자는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 사용량이 전체 전력사용량의 53%(2012년 기준)에 달하고 있음에도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어 기업들은 마음껏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각 가정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보다 먼저 행해져야 할 것은 대도시와 대공장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위해 지역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식민지적 에너지 구조 자체를 바꾸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파괴와 착취를 바탕으로 한 성장에 대한 성찰이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다른 이들의 삶을 짓밟는 성장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것이 혹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걸어가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밀양의 할배, 할매들은 이러한 맹목적인 성장의 질주에 온몸을 던져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들이 온몸과 온생을 투신하여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와 호소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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