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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에 예민한 사람들
2014년 04월 30일 (수) 22:16:53 뒹구리 istar7204@naver.com
예민함에 예민한 사람들 뒹구리(hehemol@naver.com) 다들 한번 쯤 어렸을 때 친하지 않은 어른이 애정의 표현으로 스킨십을 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늘 불편했다. 필자는 지금도 그렇고 어렸을 적에도 그랬지만 잘 모르는 사람의 예고 없는 스킨십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스킨십만큼 싫은 것이 또 있었다. 내가 스킨십을 거부하는 제스쳐를 취하면 어른들이 멋쩍은 얼굴로 ‘허허, 아이가 예민하네.’, ‘아이고, 너 되게 비싸게 군다~.’고 말하며 나를 예민한 아이 취급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내 허락 없이 하는 신체접촉이 싫다고 의사표현을 했을 뿐이다. 대체 내가 어느 지점에서 과민반응 했으며 갑자기 스킨십 해놓고 나보고 비싸게 군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나는 황당했지만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 종종 혼이 났기에 꽤 오랜 기간 동안 나 자신을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생각해봐도 내 입장의 변화는 없다. 나는 정당한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내 행동의 정당함과는 상관없이 나는 정말로 예민한 사람인걸까? 성인이 된 후 동의하지 않는 신체접촉에 거부의사를 밝히는 사람을 보고 예민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부디 없기를 바란다.) 단지 아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 때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인가. 하지만 난 잘못한 것이 없다. 잘못한 사람을 찾자면 애정의 표현이었지만 동의 없이 나에게 신체적 접촉을 한 어른들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허허 웃고 나는 예민함이란 꼬리표를 달아야 했던 걸까. 우선 예민함의 정의를 찾아보자. 예민하다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ex. 개는 인간보다 후각이 발달하여 냄새에 예민하다. 2.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ex. 선거 자금 문제와 같은 예민한 사안 유의어: 날카롭다. 민감하다. 영민하다. 까다롭다. 민첩하다. 예리하다. 사람들은 아마도 1번의 의미로 나에게 예민함을 사용했을 것이다. 내가 신체접촉을 다른 사람보다 더 인지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으로. 그러면 좋은 뜻 아니냐고? 내가 거부의사를 밝힌 후 어른들의 멋쩍은 표정과 썰렁한 상황을 떠올려보았을 때 문맥상 ‘예민하다.’라는 말이 칭찬이기는 힘들다. 그것은 내 어떤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어떤 행동에 관해 느끼는 바가 과하다는 뜻이었을 확률이 높다. 너무 꼬아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유의어들을 보라. 예민하다 대신 유의어를 적용시켜 본다면 ‘허허 아이가 참 날카롭군요.’ ‘허허 아이가 참 민감하군요.’ ‘허허 아이가 참 영민하군요.’ ‘허허 아이가 참 까다롭군요.’정도가 가능 할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가능성이 매우 적을 것 같지만 어른들이 나에게 긍정적인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민하다.’라는 뜻으로 예민하다고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기를 보내고 있는 이 때에도 수많은 ‘쓸데없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례를 많이 경험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예민함이 영민하다는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예민하다고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예민하다라는 말을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도 종종 쓴다. 그런데 예민하다는 말은 정말로 날카롭고 까다로운 사람들에게 쓰이는 걸까. 이를 알기 위해 예민하다는 말을 들어본 여러 사람의 사례를 모아보았다. 사례 1. 지역드립에 예민하게 반응한 13학번 A군 2013년 A군은 서강대에 입학했다. 입학 후 3월 한 달 동안은 많은 학생들이 섹방에 찾아오며 다 같이 모일 일도 많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A군도 대다수의 신입생이 그렇다시피 개강 후 섹방에 할 일 없이 앉아있고는 했다. 그러던 중 개강총회가 찾아왔고 A군 및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 때 사건은 발생했다. 선배 중 한 명이 전라도 지역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지역에 대한 그의 근거 없는 차별적 발언도 문제였지만 그 선배는 A군의 고향이 전라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순식간에 A군의 표정이 굳었고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그저 장난이었다며 A군에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A군은 더 화낼 수가 없었다. 선배가 농담이라고 하며 나간 후 남은 사람들도 그냥 넘어가자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비판받을 만한 사람은 딱 한 사람, 지역 차별적인 발언을 한 A군의 선배이다. 그는 분명히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차별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상황에서 그는 왜 예민하다는 말을 A군에게 쓴 것일까? 그는 자신의 발언이 잘못됨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언을 수용하지 못한 사람을 탓한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그런 회피를 다른 사람들이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민하다’라는 단어 하나가 가진 함의 때문일 수도 있다. ‘예민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을 듣는 객체가 화를 내면 쪼잔하고 눈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 2. 자기 집에서 남자친구와 같이 놀라는 선배에게 예민하게 반응한 12학번 B양 12 학번 B양은 CC이다. B양은 섹션 내에서 선배들과 자주 만나고 교우관계도 매우 원활한 편이다. 어느 날 B양은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선배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 날 B양은 감기로 몸이 힘들었지만 즐겁게 대화를 했다. 한 두 시간 후 시간도 늦고 몸도 힘들어 B양은 자리를 뜨려했다. 그 순간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B양은 걱정하는 남자친구에게 몸이 힘들어서 곧 기숙사에 들어간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갑자기 한 선배가 그녀에게 황당한 말을 했다. B양에게 본인 집에서 남자친구와 놀다가라고 말한 것이다. B양은 황당해서 자신은 집에 들어갈 것이며 선배 집에서 놀 이유도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런데도 문제의 선배는 예민하게 굴지 말고 남자친구랑 어차피 놀려면 돈이 드니 본인 집에서 놀라며 자신이 배려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오자 옆의 다른 선배들이 그런 말 하는 것 아니라며 문제의 선배를 말렸고 황망한 상태로 B양은 기숙사에 갔다. 이 상황에서 B양은 왜 기분이 나빴고 다른 선배들은 ‘그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을까. 일단 이 선배의 발언은 B양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발언이다. 그 선배가 묻지도 않은 B양의 데이트비용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 선배(놈)의 발언은 성적인 의미를 다분히 포함한다. B양이 술자리를 뜬 시각은 오후 11시 이후로 매우 늦은 시간이었다. 이 상황에서 밖에서 데이트하면 데이트비용이 많이 드니 자신의 집에서 놀라고 하는 발언은 다분히 B양과 남자친구의 성관계에 대한 자신의 상상과 오지랖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본인의 상상과 오지랖을 실제로 발언에 옮긴 것은 매우 무례한 발언일 수 있다. 사생활 침해와 더불어 상대방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는 성희롱성 발언이기 때문이다. 사례 3.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외모 지적에 예민하게 반응한 C양 C양은 한 가게에서 몇 개월 동안 즐겁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게의 분위기나 사장님이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C양 보다 아르바이트를 늦게 시작했지만 나이가 많은 동료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오고 C양은 처음에 그저 일만 가르쳐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두 달 C양과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게 된 그는 C양의 업무에 관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C양보다 늦게 가게에서 늦게 일하게 됐다고 C양에게 업무에 관한 조언을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가 사장님도 안하는 잔소리를 C양에게 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조금씩 짜증이 났다. 얼마 후부터 그는 업무를 넘어 그녀의 외모에 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왜 이렇게 칙칙해? 밤 샜어?’, ‘오늘 왜 화장을 안 하고 왔어~! 바빠도 할 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하.’와 같은 말이었다. 그녀는 짜증이 나서 ‘오빠도 오늘 얼굴 안 좋아 보이는데요?’ 라고 하면 그는 ‘왜 이렇게 예민해~ 장난인데! 무서워서 장난도 못 치겠다!’라고 받아쳤다. 주위 사람들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반복되는 상황에 C양은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고 결국 가게를 그만뒀다. 이 상황에서 그는 왜 외모지적을 농담이랍시고 계속 던진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 C양이 그보다 더 오래 일한, 소위 짬이 더 많은 아르바이트생이더라도 그녀는 ‘자신보다 어린 여자애’이기 때문이다. 너무 섣부른 판단 아니냐고? C양이 그에게 더 열 받았던 것은 그가 C양과 같이 들어온 남자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형님, 형님.’하며 깍듯이 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C양을 자신보다 경력이 많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여자애’로 그녀를 대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나는 그의 언행에 그녀가 대응하자 그는 그녀를 예민하다고 정의했다. 그녀를 예민하다고 하고 그의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의 언행이나 그녀를 예민하다고 정의하는 것에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마음대로 그녀를 예민하다고 규정지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이라도 그에게 ‘네가 말이 심하긴 해~’라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예민하다는 것은 유별나게 구는 것인데 복수의 사람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순간 그것은 별난 것이 아닌 지극히 일어날 법한 반응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는 아무도 그의 행동이 잘못된 점이 없다고 생각했거나 자신도 유별난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사례 4. 옷 지적질에 예민하게 반응한 D양 D양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체중이 많이 불어났다. 대다수의 한국학생들이 그렇다시피 대입시험을 위해 공부에만 전념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대입 후에도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어른들은 대학에 가면 살은 저절로 빠질 것이라고 했지만 살은 저절로 빠질 만큼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도 꿈꾸던 대학에 입학하면서 D양은 예쁜 옷을 입고 자신을 꾸밀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교복 말고는 치마가 하나도 없어서 원피스를 사려는데 어머니가 너 같은 애가 치마를 사면 남들이 욕한다고 말렸기 때문이다. D양은 어이가 없었다. 동생은 남들은 신경 안 쓴다며 어머니를 말렸지만 어머니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런 몸매로는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D양은 속상해서 눈물이 났고 어머니를 향해서 너무하다며 악다구니를 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를 위해서 한 말이라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하냐며 D양에게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충고했다. 소동 끝에 원피스를 샀지만 D양에게는 그 기억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고 한다. 난 이 사례를 보며 남일 같지 않았다. 실제로 뚱뚱하거나 통통한 여성이 핫팬츠를 입거나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혀를 차거나 비웃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쳤기 때문이다. 뚱뚱한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도 사람들은 종종 옷에 대해 지적을 한다. ‘너 너무 야하게 입은 것 아니야?’, ‘너 그 옷 입으면 되게 뚱뚱해 보여.’ 나에 대해서 평소에 얼마나 걱정한다고 내가 입은 옷을 지적하고 충고할까? 이에 관해 날이 선 대답을 하면 하나같이 너를 위해서 말했다는 변명을 한다. 언제 내가 날 위해서 충고해달라고 부탁했으며 충고를 원하지도 않는데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남의 복장에 훈수를 둔단 말인가. 이는 아주 개인적인 사안에 타인이 무례하게 관여하는 태도이다. 속된 말로 오지랖이다. 그런데 이런 오지랖을 시전하는 오지랖퍼들은 오지랖을 나무라면 걱정하는 자기 마음은 모르고 정이 없다거나 예민하다며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 물론 D양의 사례에서 어머니는 오지랖을 떨려고 그녀의 옷을 지적한 것은 아니다. D양의 어머니는 그런 오지랖퍼들이 있으니 D양이 기분 나쁜 오지랖을 듣지 않았으면 해서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저기 산재하는 오지랖퍼들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권리를 침해받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예민함을 무기로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무례한 말들을 내뱉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걱정을 달갑게 받지 않으면 무조건 예민한 사람. 그들은 예민한 사람에게 가시를 돋운다. 위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 간에 위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예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계관계에서 상위에 있다는 것이다. 사례 1에서 선배의 지역 차별 발언으로 기분이 상한 A군은 선후배라는 위계관계에서 아래에 위치한다. 사례 2에서의 관계 또한 선후배이다. 사례3에서는 직무위계상으로는 동일하거나 C양이 높지만 그녀는 여자애라는 이유로 상대방이 멋대로 그녀를 ‘애 취급’했다. 사례 4에서는 모녀관계로 이 관계에서도 분명히 위계가 존재한다. 즉 위계관계에서 높은 사람이 하는 말에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하거나 지적하면 예민한 사람이라는 굴레를 쓰게 된다. 이렇게 ‘예민’이라는 낙인을 찍는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언행에 타인이 감정이 상했다고 표현할 때 장난이었다거나 걱정이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장난이라고 말하는 당신, 그 장난은 당신한테만 장난이다. 장난은 상대방이 거리낌 없이 당신을 같은 방식으로 비꼬아도 상관없는 동등한 관계에서 성립한다. 당신이 직장상사라거나 하다못해 뭣도 없지만 위계관계를 포함하는 그놈의 先배라면 당신의 장난은 듣는 사람에게 장난일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걱정이었다고 말하는 당신, 남 걱정할 때 당신이나 걱정해라. 평소에 그 사람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고 도와줄 생각도 없으면서 왜 부탁 받지 않은 걱정을 강제 선물하는가. 일 년 내내 관심도 없다가 명절에 살이 쪘다는 둥, 결혼은 안 할거냐는 등의 발언은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에게는 고통이다. 조카가 당신의 오르지 않는 집값이나 융자를 걱정하는 것이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듯이 말이다. 이렇게 예민함을 유발하는 행동들은 위계관계가 바뀌면 아주 싸가지 없고 버릇없는 행동이 된다. 딸이 엄마의 복장을 지적한다거나 후배가 선배의 성생활에 대한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걱정은 있기도 힘들고, 있다면 만인에게 욕을 먹을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즉 예민함에 예민한 사람들이 예민함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보다 아랫사람이 ‘감히’ 자신의 행동을 지적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전국의 예민한 사람들이여, 부디 내 성토와 같은 글을 보고 자신을 예민하다고 자책하지 말길. (그리고 나를 대신해 한 번쯤 예민함에 예민한 사람들에게 당했던 것과 같은 예민할 만 한 일을 선물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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