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2015.3.16 월 17:26
교지'西江' 이번 호 보기 지난 호 보기 교지'西江'의 하루나기 게시판
> 뉴스 > 이번 호 보기
     
[독자투고] 22년 동안, 대체 뭘 한거지?
2014년 04월 30일 (수) 22:12:57 채우연(독자투고) gyozi@sogang.ac.kr
22년 동안, 대체 뭘 한거지? 채우연(정외 11) - 한 학생의 경험담 - #1. 휴학을 마치고 학교에 복학했다. 오랜만에 다시 온 학교는 즐거웠다. 심지어 강의마저 (비록 첫 몇 주 동안이었지만) 즐거웠다. 필기도 열심히 받아 적었고, 복습도 했고, 지정해 준 도서도 꼬박 읽었고 도서관도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중간고사가 눈앞에 다가왔다. 늘 하던 대로 시험을 준비했다. 교재를 읽고, 필기를 복습하고, 참고문헌도 읽어보고, 족보도 찾아봤다. 읽은 부분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쳤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지저분해진 책상을 정리했다. 그런데 정리하던 중에 성적표와 예전에 들었던 과목들의 수업자료가 나왔다. 오랜만에 그것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때도 열심히 한 흔적이 있었다. 빽빽한 필기와 두 번, 세 번씩 그어진 밑줄들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분명히 배운 그 내용들이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나 새로웠다는 것이다. 내친 김에 성적표도 확인해봤다. 심지어 어떤 과목은 수강했었다는 사실 마저 잊고 있었다. 성적표에는 A라고 적혀있는 그 과목에서 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감이 안 왔다. 너무나 허탈했다. 책상을 정리할수록 찝찝한 기분만 더해졌다. 내가 비록 학교를 얼마 다니지 않았지만(나는 4학기 생이다) 공부한 양은 꽤 되었다. 그 동안 책을 읽고 정리해놓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내가 ‘진짜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단순히 쌓인 자료들의 지식이 기억이 난다 안 난다의 차원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여태까지 공부해 왔던 흔적을 살펴보니 나의 공부가 발전 없이 매학기 제자리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폐휴지’만 만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지식들은 단편적으로 머리에 보관되어 있고, 새로운 지식들이 들어오면 전에 있던 것들은 그냥 사라지고 그 자리만 대신 꿰차는, 마치 윗돌을 빼서 아랫돌에 끼워 넣는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여태껏 무엇을 읽어왔고 수업시간에 무엇을 배운 걸까? 왜 이럴까? #2. 정치외교학과 수업을 듣다보면 정말로 자주 나오는 개념들이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집단행동에서 무임승차의 원리가 발생한다는 Collective-Action-Dilemma, 집단행동의 딜레마이다. 이 개념이 수업시간에 나올 때마다 많은 학생들은 또 그 얘기냐는 표정부터 짓는다. ‘아 알지. 집단행동의 딜레마. 무임승차 원리.’ 그런데 교수님이 누가 한 번 설명해보라 하면 제대로 하는 사람이 드물다. 결국 다시 교수님이 설명을 하시고 우리는 열심히 필기를 한다. 이 이론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와 생각해볼 지점들은 분명히 많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훗날 언젠가 이 개념을 접할 때는 또 똑같은 사고를 하고 있고, 똑같은 지점에서 멈출 것이다. ‘아 알지. 집단행동의 딜레마. 무임승차 원리.’ 이게 과연 제대로 ‘아는’걸까? 이걸 예전에 공부했다는 사실을 아는 건가?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세 가지 학습법 - 미국에서 교육연구를 30년간 가까이 해온 켄 베인의 책 [최고의 공부]를 보면 위에서 내가 한 생각과 경험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체계적으로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학습법을 주로 사용하는가를 기준으로 사람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피상적 학습자(surface leaners)라고 부르는 유형의 사람들은 글이나 강의에 담긴 사실과 내용을 암기하는 데 집중하는 유형이다. 심층적 학습자는(deep leaners) 학습을 할 때 글이나 강의의 숨어 있는 속뜻과 그 응용방법을 생각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보통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게 파고들며, 새로 배운 것이 자신이 이미 배운 것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고 끊임없이 자문해 보는 유형이다. 마지막 유형은 전략적 학습자(strategic learners)로써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는다. 이들은 교수가 원하는 바를 파악해 점수를 잘 따는 데만 집중한다. 이들은 개념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치 수학 문제 풀 듯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학습한다. 따라서 전략적 학습자들은 화학이나 물리 시험에서 정확한 공식에 알맞은 숫자를 집어넣을 줄 알고 서술형 문제에 적절한 답을 써낼 줄 알지만, 이 같은 능력은 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켄 베인에 의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략적인 학습법을 취하는 학생들도 있다. 정규 교육에서 그런 식으로 학습하도록 배우고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세 가지 학습 유형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피상적 학습자들은 절대 깊이 파고들지 않고, 심층적 학습자들은 절대 얕은 지식에 안주하지 않으며, 전략적 학습자들은 이해력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 학습법을 모두 사용한다. 암기가 필요하지 않은 공부란 없고, 의미를 이해하면서 해야 할 때도 있고,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전략적인 공부도 필요한 법이다. 중요한 것은 필자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에서 이 세 가지 학습법 사이의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이미 예상한 독자들도 많겠지만 의무교육 기간 동안 암기위주의 입시교육에 적응하면서 우리는 피상적이고 전략적인 학습법에만 익숙해졌다. 대입을 위한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외우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풀어보는 공부를 했지, 더 깊게 보고, 스스로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건만 수능을 위해 공부한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지 않았는가. 문학적 감성이 늘은 것도 아니고, 수학은 다 잊었으며, 영어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런데 대학 와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입시 공부하던 고등학교 때의 방식과 비슷하게 공부한다. PPT 슬라이드 외우기, 필기 복습, 연습문제 많이 풀기, 족보 풀기, 과제를 위한, 시험을 위한 책 읽기. 수업시간 필기와 교재에 있는 것만 외워서 내뱉으면 되는 서술형 시험이나, 답만 맞추면 되는 단답형 시험은 이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그 결과, 암기와 얕은 이해를 넘어서는 학습과정이 없다. 상식만 쌓아가는 느낌이 들고, 매 학기, 매 시험 ‘리셋’되는 것 같다. - 균형이 깨진 것의 의미 - 그래서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엄밀히 말하면 ‘잘못’되었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의 언급한 수능의 경험처럼 피상적인, 전략적인 방식 위주의 공부는 헛공부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균형 있게 공부하는 것 보다 단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최고의 공부] 저자 켄 베인은 다양한 측면들을 경고한다. 일단, 지겨움과 무기력감이 있다. 피상적, 전략적 공부만 하다보면 늘 비슷한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반복해서 지겹다. 지겹게 느낄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하는 ‘분량’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더욱 거부감이 들고 무기력해 진다. 또 창의력, 비판력, 사고력이 부족한 ‘판에 박힌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판에 박힌 전문가’는 절차대로 움직일 줄은 알지만, 정상범위에서 벗어난 문제가 발생하면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마주할 문제들은 절차적인 처리보다 창의력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들을 마주쳤을 때 피상적, 전략적 학습자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기 힘들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흔히 20대 시절에 많이 읽어보고, 경험해보라고 한다. 이때 경험을 해보라는 것은 많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로에 대해, 살고 있는 사회에 다양하게 고민해 보라는 의미 아닐까. 피상적, 전략적인 방법에만 익숙해지면 이 경험을 제대로 못할 가능성이 많다. - 심층적인 공부를 위해 - 그렇다고 무턱대고 심층적인 공부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쁜 생활 속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또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파괴한다. 켄 베인은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찾아서 심도 있게 파고들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최고의 공부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크다. 우리 사회에서는 매년 80%의 고등학생들이 대학으로 진학을 한다. 학문의 추구를 위해서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드물다. 대학교는 취직을 위해서, 졸업장을 따려고 다니는 곳으로 (거의) 변질 되었다. 취업 경쟁이 심화되며 점점 학점이 중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점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평소의 공부습관을 조금만 바꿔보자는 것이다. 시험 전에야 전략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공부 할 때는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노력’ 하는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심층적 공부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고, 어느 정도까지 해야 깊이 있는 공부라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 공부 해왔던 방식이 그렇지 않았고,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하다보면 대학에서 공부한 것들도 수능에서 공부한 것처럼 똑같이 ‘리셋’되고 발전 없이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거 같다. 그래서 일단 여태까지 해보지 않았던 방식들을 생각해 보았다. 한 번쯤 수업이든 어디선가 들어보았지만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방법들. 이런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 글쓰기 과제에서 받은 피드백을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에 맞춰서 수정해보기 - 제출한 시험지 답안 검토하기, 다시 생각하고 풀어보기 - 어떤 주장이 있으면 찬반을 정해서 말이 되든 안 되든 한쪽 주장으로 밀고 나가보기 - 1학기 들은 수업을 1장으로 요약하기, 읽은 책을 1장으로 요약하기 - 좋은 생각이 있으면 생각만 하지 말고 글로 정리해보고 친구와 토론해보기 - 수업을 들으면서 ‘왜’라는 질문 계속 던져보기 - 기타. 이 글을 읽는 학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글을 다 쓰고 보니 마치 내가 모든 것을 경험한 인생선배가 후배를 가르쳐주듯 썼는데 그럴 의도도 없었고 그렇게 읽히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통해서 결국 전하고 싶었던 것은 항상 피상적, 전략적 공부에 머물러 있는 나의 경험과 이에 대한 생각이고 더 풍요로운 대학 사회를 위해서 같이 해보자는 일종의 청유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심층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래서 굳이 깊은 학습을 위해 ‘노력’하자고 표현했다. 항상 하던 습관에 머무르지 않고,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 보려는 마음가짐, 이것이야 말로 성적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공부만을 해오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를 위해서 되찾아야 할 것 아닐까. 끝으로, 이런 생각들을 하게 영감을 준 정치외교학과 이관후 교수님과 이 주제에 관해 얘기한 것을 간략하게 옮겨보고자 한다. 글쓴이: 교수님, 저는 항상 공부에 깊이가 없습니다. 책을 읽어도 도대체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항상 대략 책이나 강의가 뭔 내용인지 파편적으로만 알고 그저 누가 무엇을 주장했다 식의 상식만 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요즘은 한 권의 책이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인데, 생각보다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깊이 있는 독서를,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 깊이가 있는 독서는 단순히 저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독서는 말한 대로 무의미한 독서가 될 가능성이 높죠. 깊이 있는 독서, 비판적 읽기를 하고 싶으면 주제 의식을 가지고 읽어야 되요. 대부분의 비판적 읽기란 어떤 주제에 대해서 목적을 가지고,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입니다.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읽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나는 그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계속해서 비교해나가면서 읽어보는 것이죠. 아무 생각 없는 상태로 읽으면 읽히지도 않고 책에 끌려갈 가능성이 높아요. 예를 들어 봅시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는다고 합시다. 이 책을 그냥 읽어볼 것이 아니라 ‘정치란 무엇인가’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읽는다고 하면 우리는 글을 전체적으로 보면서도 저자가 정치에 관하여 말한 부분 중심으로 읽어보고 다시 찾아보겠죠. 여기서 그 부분을 자신의 관점과 비교해보고 주장에 대한 근거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단순히 누가 무엇을 말했다가 아니라 그 책이나 주제에 대한 ‘내’ 생각과 주장이 생기는 거죠. 이런 독서는 남을 수밖에 없죠. 또 깊이 있는 독서와 동시에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열심히 읽어서 깊이 있는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벽돌을 쌓아가는 그런 수직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치 흙을 쌓는 것처럼 넓은 토대 위에 쌓는 것입니다. 고전을,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책을 한 번 잡았으면 무조건 끝까지 읽겠다는 생각도 버리세요. 재미가 있으면 읽고 아니면 과감하게 던지세요. 읽어야 하는 책은 너무 많고 나를 잡아당기는 책들이 분명 있습니다. 책들을 계속 읽다보면 연관이 됩니다. 이 책에서 한 얘기가 저 책에서도 나오고, 그 과정 속에서 의문점이 생기게 되고, 그 의문점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신의 관점이 생기고, 주제의식도 생기게 됩니다. 독서든, 공부든 이런 거예요. 넓고 깊게 될 수밖에 없어요. 글쓴이: 말이야 쉽지만 깊게 공부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피상적인, 전략적인 공부만 해오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교수님: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질문을 만들려는 습관을 꼭 가지세요. 일상에서도, 수업에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자꾸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세요. 사실 60년대, 70년대 옛날 학생들은 그런 훈련이 잘 되어 있었어요. 그때는 입시교육이 아니었고 중고등학교 때 책도 많이 읽고 독서 교육도 잘 되었어요. 요즘 학생들은 폭 넓은 도서를 입시 이후에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점이 미숙한 것 같아요. ‘왜’라는 질문을 자주 하세요. 교수님들은 한 학기 동안 상당히 많은 양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중간 중간 논리의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수업을 듣다가 논리적으로 안 맞는다, 무엇인가 걸린다 싶으면 노트에 적어보고 질문을 남기세요. 물론 수업마다 다르겠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모두 다 받아 적는 것이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깊이 이해하는 학생은 그런 것보다 핵심적인 부분들을 적은 다음 질문을 잘 만드는 학생입니다. 질문이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그 학생이 이미 수업 시간에 내용에 대해 주의 깊게 들었고, 핵심을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학생에게는 수업 시간이 그냥 의미 없이 지나가지 않겠죠. 수업 시간에 생긴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찾아보는 것. 이게 공부입니다. 이 과정은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지금 안하고 있다면 질문을 만들려는 습관을 꼭 가지기 바랍니다.
ⓒ 서강교지(http://www.gyozisog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21-742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교지’西江’ | 02-705-8262 | 팩스 02-703-079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재현
Copyright 2009 교지’西江’.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yozisog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