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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세가지단편-취업시장과 마주하여
 닉네임 : 가영  2009-09-05 18:44:32   조회: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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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단편 - 취업시장과 마주하여...



손가영 편집위원(rockyrkdud@gmail.com)

들어가며

취업은 언제나 우리의 고민입니다. 아니 이 사회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고민해 볼 거리입니다. ‘돈’은 인생에서 필수적인 요소이고, 이를 위해서는 사회활동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4년, 혹은 그 이상의 대학 생활 후의 진로는 대부분 취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취업시장은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경영학의 마인드, 다양한 경험, 전문 능력을 보증하는 각종 자격증 등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대학에서 마음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 되어버릴 정도입니다. 학벌, 경영학 마인드의 유무, 다양한 경험, 전문 능력을 보증하는 자격증 등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기준이 되어버린 그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담은 글 세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첫번째 글은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하게끔 만드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담은 글입니다. 두번째 글은 자신이 이뤄온 다양한 활동과 궤적이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필터링’되는 것과 관련된 글입니다. 세 번째 글은 취업준비가 ‘쩐의 전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취업준비생이 느낀 고민을 담은 글입니다.

‘이건 아니잖아’라고 말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하게 만드는 현실... 이 현실의 도돌이표를 끊을 수는 없을까요? 세가지 고민들을 나누어 보면서 현실과 우리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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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공 권하는 사회

베이브[whatdoineed@naver.com]

먹고 살 것을 걱정하고 있는 대책없는 4학년


#1

나는 아빠처럼 회사에 가는 것이 싫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새벽 2시. 누군가 뒤척거리는 느낌에 이불 속에서 슬쩍 눈을 떠보면, 그때서야 아빠는 담배 냄새에 절어 귀가하기 일쑤였다. 아빠처럼 힘들고, 노곤한 어른이 절대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회사원만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2

나는 대학에 왔다. 입학 무렵까지 품고 있었던 단단하고, 거창한 꿈들이 사그러져 갔다. 머리가 크고, 알아가는 세상 일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에 대한 기대 수치가 낮아졌다. 하지만 당시의 내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것 역시, 20대 초반을 살아가는 대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인문대 학생인 나는 경영, 경제 전공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친구들과 달리 사회과학 계열의 복수전공을 택했다. 친구들은 나를 신기해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했다.


#3

‘너, 죽어도 이 일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한 적 있어? 그럼 그냥 회사 취업이네? 경영해라, 경영.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네가 인사담당자라고 생각해봐. 기업에서 어떤 전공 학생을 좋아할지...’

가끔씩 만나는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선배들은 나의 전공에 대해 듣곤 혀를 끌끌 찼다. 특별히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후배가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공을 붙들고 앉아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격려를 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아직 고민 중이라는 답을 듣기보다, 미래에 대한 지침을 말하는 것에 익숙한 선배들은 힘주어 경영 전공을 권했다. 나보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의 진심어린 이야기에 내심 불안해졌다. 생물학, 종교학 등 문이과를 넘나드는, 엄청난 학점의 타전공 수업들을 들어놓은 터라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결국 전공신청 기간을 놓치고, 그 다음 학기에서야 복수전공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전공 신청 란에는 3개의 전공이 적혔다.

#4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휴학 계획이 어그러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계속 다니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계획없이 갑작스레 4학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취업준비’ 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했다. ‘취업 = 기업입성’ 이라는 공식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굳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기업 입사준비 스터디는 하느냐’. ‘어학점수는 있느냐‘ 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지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취업 지원팀의 친절한 문자 서비스에 눈을 뜨는 하루가 익숙해지고, 누군가의 인턴소식이나, 합격 소식에 점점 무덤덤해졌다. 그렇지만 내심, 목적지가 없이 달리는 기차마냥 불안감은 더해갔다.


#5

그때서야 나는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미 사회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터전을 일구어 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와 나의 간격이 좁아질수록,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심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지원했던 각종 대외활동과 인턴에 떨어질 때마다 아빠 모습을 떠올리면서, 어린 시절의 부질없는 다짐을 후회하곤 했다.


#6

‘거기 되게 용하대. 밑지는 건 없으니깐,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평소에 미래에 관한 각종 민간요법을 신뢰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미래가 불투명해질수록 사람들은 절대적인 것들에 열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 역시 부끄럽지만 아는 선배와 함께 그 곳을 찾았다. 무언가 압도하는 분위기의 작은 방. 왠지 모르게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아주머니 한 분과 마주 앉았다. 생년월일을 받아 적자마자, 전공을 물었다. 다소 위축된 듯이 대답하는 내 모습을 잠시 동안 응시하더니, 앞에 놓인 공책에 붉은 색연필로 무언가를 써 갈겼다.

‘경영 경제 쪽을 가서 회계사를 했으면, 참 잘 풀렸을텐데... 아쉽다, 아쉬워...’

‘네에? 전 처음 들어보는 소린데요...’

그 날, 먼 길을 돌아오면서 나는 유난히 기운이 빠졌다.


#7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방법이 좀 우습긴 하지만 고민하던 것들을 실행에 옮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생활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경영학 수업들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종합학문답게 나름대로의 학문적 특성과 매력이 있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으로 채울 수 없는 현실적 부분들도 강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하고 싶은 공부’ 여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선택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부담은 학문의 깊이에 대한 고민이었다. 3전공을 기준으로 전공 선택, 필수를 포함한 필요학점은 거의 120학점에 달했다. 이 학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한 전공에 대한 흥미와 깊이가 느껴질 무렵, 다시 새로운 학문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학기당 평균 20학점 정도의 수업을 들어오면서도, 내가 과연 전공자로서의 소양을 충분히 기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8

아직도 나는 내가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아직은 그렇다. 하지만 고민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 세찬 현실이기에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고자 한다. 학문적 내실없는 나의 그럴듯한 전공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변명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확신 없는 내 미래에 대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모두 가져야만 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오늘도 마태오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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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너를 위해 살아왔던 나날들, 고백할게

꿈꾸는 고채[sneeze11@naver.com]

C대학 CC가 부러운 여대생

일본어 JLPT 1급, 토익 880, 토플 90/120, 한자 2급 자격증, 미국 교환학생 예정, 동아리 홍보팀장, 캐나다 어학연수. 지리산 등반, 삼성 PR공모전 장려상, 학점은 애교로 3.5, 상담센터 봉사활동, 대학로 문화축제 기획단, 2번의 학년 과대표, 경영 복수전공, 정보처리기능사

안녕하세요. 이는 외국계 다국적 기업의 해외마케팅 부서입사를 목표로 하고 있는 C대학 심리학과의 K양의 이야기입니다. 위에 적어놓은 어줍지 않은 자격증들과 활동들은 전부 스펙을 위한 것입니다. 그녀가 해왔던 대학활동에 스펙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무 극단적인가요?

터놓고 말하겠습니다.

K, 스펙을 위해 목숨 바치며 살아왔어요. 지금도 이걸 하면 이력서에 쓸 수 있을까? 내가 했던 이걸 이력서에 쓸 수 있을까? 이력서에 쓰지도 못하는 것을 왜 힘들게 했을까 그냥 포기할걸.

어느새 타인이 아닌 K 스스로가 검열하면서 이력서의 한 칸 지워버리고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경지까지 와버렸네요. 물론 이 활동들만 한 것은 아닙니다. K가 말하지 못한 것들도 많습니다.

세상은 열정과 호기심탐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새내기 K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일본 배낭여행, 베트남 자원봉사, 학교 단과대 가요제참가, 길거리에서 기타 치면서 노래하기, 인터넷 쇼핑몰 창업하기, 학교 행사 MC 보기, 국제영화제 자원봉사, 지리산등반, 책 200권 읽기, 영어 번역 아르바이트 하기, 카페 알바하기, 농활, 마라톤 20km완주하기,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보러가기, 여자 철인 3종경기, 댄스 공연, 워킹홀리데이, 동아리 임원 등등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봉사활동조차 전에 그와 비슷한 다른 활동들을 했다는 ‘증거’를 내밀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제까지 쌓아왔던 경험들은 스펙으로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치열한 취직시장에서 나를 상품으로 채택하도록 하려면 말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K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력서를 채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지리산등반, 워킹홀리데이, 베트남 자원봉사, 마라톤 20KM완주만 제외한 나머지를 과감히 버렸습니다. 지리산등반과 마라톤 20km는 성격의 장단점을 이야기할 때 끈기를 보여주는 내용에 넣기 위해, 베트남 자원봉사는 봉사활동에 넣고 워킹홀리데이는 모험심과 탐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보수적인 기업에는 워킹홀리데이대신 캐나다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임원진활동을 말하고, 이번 S그룹 인턴 하려면 책 읽는 시간에 SSAT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낫겠고. 일본보단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면접 볼 때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겠지 등등 많은 생각이 들었지요. 시간과 돈은 한정되어 있고 이왕이면 ‘취직’에 도움 되는 스펙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K의 (속칭) 필터링기준에 동의하시나요?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연극을 하고 싶었지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도 연극무대에 서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내가 연극무대에 섰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연극무대 경험’ 이걸 왜 적지?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간의 그녀의 꿈은 종이 한 장위에서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마케팅공모전을 하나 더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심대로 며칠 뒤에 K는 삼성 PR공모전에 응모하였습니다.

또 K는 단순히 ‘하고 싶었던 활동’ 이라도 어떻게 하면 자기소개서에 요리조리 끼워넣을 수 있을까? 란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가요제에 정말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말하면 예쁘게 포장할 수 있을까? 농활 다녀온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혹은 여러 사람들과 협동할 기회였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했을까요? K는 오롯한 K로 살 수 없고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이력서를 쓸 K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녀가 지나칠 정도로 스펙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K의 어머니는 어린이집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장부정리를 돕던 그녀는 이력서 뭉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지원자의 이력서에 일본어 JLPT 1급자격증. 자원봉사 수상. 중국어 HSK 7급.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이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에 지원하는사람이 쓸데없는 것만 잔뜩 적어놓고 피아노도 못치고 보육교사 1급도 아니구나..” 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에 K는 국어시간에 썼던 주제 맞춰 글쓰기가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주제를 주고 그 주제에 맞는 내용을 써야 하는 것.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고 했는데 가족들과 소풍갔던 이야기를 쓰면 꾸중을 들었던 국어시간. 취업 시장 역시 자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 혹은 기관에 맞게 자기 인생 이야기를 고르고 읽기 좋게 적는 국어시간과 비슷한가 봅니다. 하지만 어릴 적에 단순히 혼이 났던 정도가 아니라 생계와 사회적 위치를 고민해야 하는 벌을 받게 되겠지요. K 역시 이런 벌을 피해가기 위해 삶의 주체를 그녀 자신이 아닌 사회에 돌려버리는 한 대학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 그녀는 교환학생 학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고 내년 상반기 인턴을 알아보고, 양로원-고아원 봉사활동 알아보고, 어느 단체 ‘장’을 맡고, 인적성검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추가로 토익점수와 학점을 올리고 영어회화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K에게 바보 같은 면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그녀는 하고 싶은 것보다는 그녀가 해야 할 것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최근 그녀의 친한 친구들은 단순히 놀러 홍콩에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가면 중국에 대해 문화적 차이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란 생각이 듭니다. K뿐만이 아닌 수많은 대학생들이 이야깃거리를 만드느라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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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기 전부터 돈을 써야 하는 고민은 시작된다.

하루종일(wonvic83@hanmail.net)

중앙대 7학기생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면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번 방학에도 토익시험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토익 학원을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는 어학성적 란을 채워야만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 칸을 알차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이제 사교육과는 멀어지는 구나 생각했는데, 토익 점수를 위해서 몇 십만을 지불하며 또 다시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 결과 800점이 넘는 점수를 얻었다. 이쯤이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800점대는 너무나 흔한 점수였고, 목표를 높여야만 했다. 다음 방학 때 다시 토익 문제 풀이에 시간과 돈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900점 초반 대. 이제는 토익에 시간도 돈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쯤이면 됐다. 어차피 토익 점수는 형식적일 뿐이라며, 그렇게 당당히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새로운 토익 책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래 지금 토익 시험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이렇게 위안을 삼지만, 뭔가 씁쓸하다. 이것이 바로 학생들을 영어 학원, 인터넷 강의에 돈을 쓰게 만드는 불안함인 걸까. 매번 시험에 응시하면서 나의 의지가 아니라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고,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소비해야 한다. 시간도, 돈도. 토익만이 아니다. 컴퓨터 자격증도 따야만 하는데...

지금 나는 돈에 대한 ‘투정’을 부리고 있다. 누군가는 우습게 볼 수도 있지만, 돈 문제는 나에게 1차적인 고통으로 다가온다. 학년이 점점 올라가면서, 졸업이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챙겨야할 것들이 고공폭격으로 생겨났다. 학비와 더불어 토익, MOS 자격증, 어학연수 등... 학원에 등록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려 다니다 보면 내 머릿속은 돈에 대한 걱정으로 점점 차게 된다. 내가, 아니 우리가 왜 대학에 와서까지도 학원비, 시험비로 머리를 싸매어야 하는지 생각을 하다보면 답답하다. 답이 없으니까. 이 복잡다난한 심정은 대부분 ‘후.. 부모님께 부탁드려야지.’로 끝맺게 된다.

토익 시험과 자격증을 넘어서 어학연수로 가게 되면, 돈의 단위가 달라진다. 물론 그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그 나라의 문화 속에서 배우고자 하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 다만 그것이 점점 하나의 스펙으로 보편화되어 가고, 어학연수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하나의 자격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서비스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은데, 돈이 많으면 기회가 많아지고, 돈이 부족하면 기회가 적어지는 현실. 그것이 바로 능력으로 인정받아 취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시될까봐 무서울 뿐이다.

대학이라는 장소를 학문을 연마하는 곳으로만 보기에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자립을 위한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취업이 필수적인 현실에서 대학 생활이 취업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문계열에 다니기에 더욱 뚜렷이 느껴지는 현실,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전공 공부에만 몰두하는 것이 바보처럼 되어가고, 따로 취업을 위한 사교육에 돈을 투자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 학기에 몇 백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주고 다니는 대학교 교육을 두고, 또 다시 돈을 들여서 교육을 받아야 하다니. 공무원 학원에 다니며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친구를 보면 안타까움은 더하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쩌다 만나게 되면 투덜거리는 친구를 보면, 나 또한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다. 저것이 과연 꿈을 위한 투자인건지, 취업을 위한 사교육의 함정인건지.

물론 취업시장에는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기업들도 천편일률적인 지원자들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많은 ‘증(證)’들은 기본 요건이 되어있다. 또한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취업난’은 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경험과 능력을 요구하고, 이에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스펙을 높이고자 돈을 소비한다. 그러다 결국은 모두 같아지고, 더욱 높은 곳으로 한걸음이라도 옮기기 위해서는 또다시 돈을 확보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패배자적인 하소연에 빠져있는 것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새내기 때 가졌던 꿈은 이런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0대 대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낭만적인 꿈을 외치는 것이 철없음이 되어 버린 사회가 안쓰러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학기 초에는 ‘스튜어디스 교육 동아리’의 광고포스터를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다. 1학년 여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연합 동아리였는데, 그 포스터를 보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아서 아직 기억이 난다. 충격이라기 보다 무서웠다고 해야 할까. 대학 사교육은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들이 과연 어디까지 발전(?)해 갈지 생각해보면 씁쓸해진다.

친구 녀석이 요즘엔 영어 말하기 시험이 대세라고 한다. 이제 토익 900점이 갓 넘어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새로운 벽을 넘기 위해서 또 다시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더 치졸하게 얘기하자면 토익 응시료의 두 배에 달하는 돈을 준비해야 할 것같다. 그리고 시간도 함께. 이런 저런 압박감을 한껏 가진 채, 마지막 학기인 8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2009-09-05 18: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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